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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대부흥운동 (1903-08)

1907 평양 대부흥은 없었다

[그런 사건은 없었다]
망각한 사건은 사건이 아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으면 그 사건은 전설이 된다.
 
그해 1월 14일을 기억하는 한국 교회는 없다.
그래서 그 사건은 신화가 된다. 아니 이미 신화가 되었다.
 
2007년에는 서로 그 사건을 기념한다며 난리를 쳤다.
 
그러나 10주년, 20주년, 30주년, 40주년도 기념하지 않았고
50주년은 소수의 무리만, 60, 70, 80주년도 조용히 지나갔다.
110주년도 루터종교개혁 500주년에 묻어갔다.
 
토마스목사 순교는 60주년부터 꼬박꼬박 챙기지 않았더냐?
그런에 왜 같이 평양에서 일어난 부흥은 잊었더란 말이냐?
너희에겐 토마스가 더 사용 가치가 있었던 것이냐?
 
이제 1월 14일을 거론하는 자는 한 명도 없다.
그날이 무슨 날인가 후손에게 말하는 자도 없다.
그 날이 정말 중요하다면 어찌 그냥 지나 갈 수 있으랴.
그러니 한국 교회에 112년 전에 그 일이 일어났다고 말할 수 없다.
 
망각의 한국 교회여,
112년 전 너희가 오매불망 바라는 부흥이 있었다.
12년 전에 너희가 그리도 이용해 먹은 평양 대부흥.
2007년에 목청껏 외쳤던 Again 1907,
바로 그 부흥의 날이 이제 1주일 후로 다가왔다.
그 신화 같은 날이 다음 주이다.
 
한국교회는 1886년 1월 초부터 부흥을 위해 합심 기도했다.
평양교회는 1894년 1월 초부터 매년 1월이면 부흥을 위해 기도했다.
그 결과 20년 후, 10년 후에 부흥이 왔다.
한 해 외치고 말 일이면 아예 시작을 하지 말라.
한 해 기념하고 말 일이면 도무지 엄두도 내지 마라.
 
112년 전 1월 장대현교회에 대 회개의 영이 임했다.
새벽 2시까지 추위 속에 서서 죄를 회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밤이었다.
한국 교회가 새로 태어나는 날이었다.
 
 

옥성득, 『한반도 대부흥』 (홍성사, 2009), 231. 그 날을 잊어가던 102주년 때에 안타까워서 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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