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용(龍) 가운데 생생하게 살아 있는 듯한 용을 꼽자면 1536(중종 31)년에 완성한 자격루(물시계)에 새겨진 용들이 크고 멋있다. 오른쪽 용을 펼치면 두 번째 그림처럼 된다. 용이 비와 물의 신이므로 비와 연관된 자격루에 어울리는 상징이었다.
1. 상서로운 용(동아시아) vs 악의 상징 용(서구)
그런데 서양[기독교]에서는 dragon이 악의 상징이라, 성경 계시록이 번역된 1900년부터 한국 교회에서 용은 악마의 상징으로 변한다. 황제나 왕의 상징이요 농사를 짓게 해 주는 비의 신인 용이 사탄의 상징으로 변했다. 한문 성경에서 먼저 龍으로 번역했기에 다른 선택은 어려웠겠지만, 아쉬운 부분이다. 이에 대한 한국인 그리스도인들의 갈등을 적은 글을 아직 찾지 못했다. 아는 분이 있으면 알려주기 바란다.
성경에서 '용'으로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 탄닌(tannin) 혹은 그리스어 드라콘(drakon)이다. 헬라어 70인역에서 바다의 괴물 리워야단, 탄닌 등을 드라콘으로 번역했다. 서양의 용은 악마, 사탄의 상징이다. [참고 김은정, "구약성경의 ‘탄닌(Tannin)’ 이미지와 한·중 번역 연구," <성서원문연구> 제38호 (2016년 4월): 72-96.] 중세 때 영웅들은 마을 떠나 고난 끝에 드래곤을 죽이고 인질인 처녀를 구해서 금의환향한다. 이 상상의 동물은 거대한 뱀으로 때로 폭군을 의미한다. 따라서 중국이나 한국에서 황제나 물신(水神)을 의미하는 용과 다르다. 바다 용궁에 가면 용왕이 살고, 심청이도 용왕을 만나 약을 얻고, 바리공주도 용왕에게서 영약을 얻어 왕과 부모를 살린다.
'탄닌'은 구약에서 ‘혼돈과 악의 이미지’를 가지는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아래 도표에서 보듯이 개역이나 개역개정에는 주로 용이나 뱀으로, 공동번역과 표준역에서는 용과 뱀으로도 간혹 번역했으나, 바다의 괴물로 여러 번 번역했다. 중립적으로 동물을 묘사할 때는 큰 뱀, 악어, 심지어 여우, 승냥이로 번역되었다. 시편 74:13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에서는 부정적인 뜻으로, 시편 148:7 (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에서는 중립적으로 사용했다. 신약에서는 계시록에 12번 나오는데, 모두 드라콘 용으로 사탄이나 적그리스도를 상징한다.
2. 제국주의의 상징 용
1928년 신채호는 소설 <용과 용의 대격전>에서, 천상국 상제의 미리님(용: 서양 제국주의의 상징)이 조선 민중을 억압하자 드래곤(용: 민중해방의 무정부주의 상징)이 나타나 신국을 없애고 지상에 이상국을 건설한다고 썼다. 천국, 상제, 예수, 용 미리를 반대하면서, 왜 민중의 용은 영어 드래곤으로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서양 용을 비판한 첫 글이 아닌가 한다. 신채호는 이때 아나키즘에 경도되어 있었기에 제국 정부나 거짓 종교를 없애는 드래곤을 아나키즘의 상징으로 그렸다.
이와 결이 다르지만, 길선주는 계시록 전통에 서서 1930년대 군국주의로 질주하는 일제를 바빌론, 붉은 용으로 보고 그 멸망을 예언했다. 신사참배와 황제요배를 강요하던 일제는 1945년 망했다.
혼돈의 세상이다. 악과 선이 싸우고 제국주의와 민주주의가 싸운다. 세상은 창세기 1장 2절부터 혼돈과 질서의 싸움, 어듬과 빛의 싸움이다. 동아시아 철학 중 유교에서는 이 혼돈과의 싸움 모티프가 약하다. 태초의 혼돈과 무질서에서 태극이 나오고 태극에서 음양 오행이 나와 만물이 만들어진다는 진화론적 사고를 한다. 악과의 싸움은 민중 도교에서 세속화되면서 퇴마와 병 치유를 위한 부적 판매와 제액과 축귀 의식을 낳았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인간론, 인성론에 관심이 많았다. 19세기 중반부터 제국주의 괴물/리바이어던이 한반도에 몰려왔고, 이무기에서 용이 된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다. 러일전쟁(1904-1905) 후 드이어 한국인은 제국과 근대 국가 개념을 갖기 시작했고, 대한 '제국'이 실패하자 1919년 임정에서 대한 '민국의 꿈을 꾸었다. 국망의 혼돈과 싸우기 위해 기독교, 천도교, 대종교는 정치 신학으로 무장하고 새 나라를 꿈꾸었다. 이때 동시에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의 국가관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1920년대 이후 지난 100년간 분단된 한반도에는 여러 이념이 싸우고, 제국과 국가가 싸우고, 악과 선이 싸우는 혼돈의 세상이다.
3. 미꾸라지와 이무기만 설치는 한국 교회
한국의 수많은 지명에 '용'이 들어가고, 많은 사람들의 이름에 '용'이 들어간다. 다 상서로운 뜻이다. 용꿈을 꾸고 아들을 낳으면 대개 '용'자를 넣었다. 그러나 1900년 이후 그리스도인들은 아들 이름에 '용'자를 넣지 않았다. 교인들에게는 일종의 금기어가 된 셈이다. 그런데 이런 교인들의 습속이니 인식에 대한 자료가 없다.
교회에서 용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어쩌면 한국 교회라는 개천에서는 용이 안 나오고 모두 잔챙이 미꾸라지들만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흐린 물에서 거짓의 영 이무기와 드래곤들만 나와서 교회를 미혹하고 망치고 있다.
영웅적 용을 기다리는 시대는 지났다. 하늘로 승천하는 청룡이 없다면, 미꾸라지나 이무기 대신, 땅에 기는 지렁이를 키우자. 척박한 땅에 유기농 거름을 주면 지렁이들이 지천으로 자란다. 공중부양하는 천룡보다 땅을 기며 흙을 부드럽게 하는 지룡(地龍) 지렁이가 필요한 때이다.
(사족) 12개 동물로 한 해를 보는 관점은 기독교적이지는 않지만 또 크게 무시할 것은 아니다. 띠는 신년 1월 1일에 바뀌는 것이 아니고 음력 구정에 바뀌는 것도 아니며, 24절기의 첫 절기인 입춘(2월 4일)에 바뀐다. 입춘대길이다.
수정 2024.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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