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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목사, 신학교

1907년 첫 장로교회 목사 안수식은 9월 17일 장대현교회에서

신학교 졸업은 1907년 6월 20일에 평양 장로회신학교에서--이 사진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목사 안수는 독노회에서 1907년 9월 17일 밤 평양 장대현교회당에서 거행되었다. 아래 사진이 그 기념 촬영이다.

장대현교회 남자석에서

졸업식 때처럼 한석진을 제외하고 모두 의관을 정제하고(갓을 쓰고) 안수를 받았다. 참석한 교인들은 남자들은 거의 갓을 쓴 채 예배를 드렸다. 안수식은 선교사들과 한국인 장로들이 함께 참여했다. 1907년 10월 7일, 평양 주재 북장로교 선교사 번하이젤이, 선교부에 독노회를 설립한 사실을 보고하는 편지를 보자.

"이 날은 이 나라 교회에 대단히 의미심장한 날입니다. 마포삼열 박사가 첫 독노회 노회장에 선출되었습니다. 우리는 곧 일곱 명의 목사 후보생을 시취하고 그들이 시취에 통과한 후 17일 밤을 안수식 날로 정했습니다. 그날 밤 많은 청중들이 그 엄숙하고 인상적인 예배를 목도하기 위해 산정현교회에 모여들었습니다. 일곱 명이 강단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고, 선교사들이 한국인 장로들에게 앞으로 나오라고 요청한 후 노회장이 안수기도하고 있는 동안 모든 시취 위원들이 안수받을 사람들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한국 장로교회 최초의 안수받은 목사들이 되었습니다."

9월 17일 오전과 오후에 장대현교회에서 독노회 조직

이보다 앞서 1907년 9월 17일 오전 9시, 한국인 장로 36명, 선교사 33명, 찬성 위원 9명, 합 78명의 회원이 모인 가운데 평양의 장대현교회에서 역사적인 “대한예수교장로회 노회”가 조직되었다. Samuel A. Moffett(마포삼열), James S. Gale (기일), Graham Lee(이길함), William M. Baird(배위량), William L. Swallen(소안론), William N. Blair(방위량), Charles A. Clark(곽안련), George S. McCune(윤산온), William D. Reynolds(이눌서), Eugene Bell(배유지), Alexander F. Robb(업아력) 등 영향력 있는 선교사들이 선교회를 초월하여 거의 모두 참석했다.

외국 교회에서 독립한 한국 자체의 독노회였다. 독립이 절실할 때 교회가 독립한 것이다. 마포삼열 공의회 의장이 독노회 조직을 알리는 고퇴를 두드린 시각은 정확히 12시 정오였다. 오후 2시에 회의를 속개하여 노회 임원을 선출했다. 노회장 마포삼열, 서기 한석진, 송인서, 회계 이길함이 선출되었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불참한 언더우드에게는 독노회 조직을 알리는 전보를 보냈다. 

"지난해 장로회공의회 회장 배유지 목사가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을 가지고 설교하고, 게일 목사가 떡을 가지고 축사하고 분병하였고, 배유지 목사가 포도주를 가지고 축사하고 장로들이 분잔하여 성례식을 거행했다. 이어 그 해 공의회 회장이었던 마포삼열 선교사가 남북장로교, 오스트리아, 캐나다 장로교 총회의 허락을 받아 노회를 설립하게 되었다는 취지를 설명하고 “네 곳 총회에서 얻은 권리대로 여러 선교사를 대표하여 대한예수교장로회 노회를 창설하노라”고 선언했다. 오후 2시에 속회된 노회에서 노회장 선거가 진행되어 게일 선교사의 천거로 마포삼열 선교사가 노회장에, 부노회장에 방기창(邦基昌), 서기에 한석진(韓錫晋), 부서기에 송인서(宋麟瑞), 회계에 이길함이 선출되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립)노회, 1907년 9월 17일, 장대현교회. 중앙에 서경조, 이기풍, 길선주, 방기창, 노회장 마페트, 한석진, 송인서, 양전백 

9월 17일 저녁에 장대현교회에서 7인 목사 안수식

오후에 한국인 목사 후보생 7인에 대한 시취가 있었다. 노회장이 14인 선교사 목사를 시취위원회로 임명하여 한인 후보생들이 제출한 "parts of trial" 곧 설교문과 강해문을 검토하고 저녁에 보도하도록 했다. 또한 각 분야별로 구두 시험을 쳤다. 신학은 Reynolds, 교회 정치는 Adams, 교회사는 Junkin, 성경 입문은 Gale이 각각 문답을 했다. 네 위원 모두 후보생들이 시험을 통과했다고 보고하자, 저녁에 안수를 주기로 결정했다.

저녁 모임은 7시 30분에 속개되었다. 한국 장로교회의 첫 열매, 시험을 통과한 진실한 7명이 안수를 받았다. 시취위원회 보고에 이어 노회장이 안수식 거행을 선언했다. 5년 간 수업을 잘 마친 7명이 일어나서 엄숙하게 목회자로서 장로회 표준서를 준수할 것을 선서했다. 이어서  딤전 4:14절을 따라 안수하는 의식이 거행되었다. 7명이 무릎을 꿇고 앉자, 노회장이 엄숙하게 성별하는 기도를 하는 가운데 선교사 10여 명과 장로 여러 명이 한 사람씩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했다. 7명 안수 후 모두 일어나 악수를 하며(갈 2:9) 인사를 했다. 이들을 격려하며 축하하는 말들이 조용히 오갔다. 

게일 목사와 레널즈 목사가 축사를 했다. 영국성서공회 총무 밀러 장로가 새로 목사가 된 7인 한인에게 특별 장정한 신약전서를 선물로 증정했다. 7인 중 연장자인 서경조 목사가 축도함으로 안수식이 끝나고 독노회 첫 날의 모든 모임이 폐회되었다.  ("The Presbytery of Korea," Korea Mission Field [Nov. 1907]: 162-163.)

안수식에는 미국의 세브란스 장로, 영국성서공회 한국지부 총무 밀러 장로가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