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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종교개혁과 한국교회

칼뱅, “교회 개혁의 필요성” (De necessitate reformandae ecclesiae), 1543

교회 개혁을 위한 칼빈의 이 논문은 이후 개신교 개혁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의 하나로 남아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선포하고, 성례(세례와 성찬)를 신실하게 베풀어야 한다. 이 본질에서 떠나는 교회는 타락하고 세속화된다.  예배, 신학(구원론), 성례, 교회 정치의 개혁이 긴급하다. 세상 개혁 이전에 교회를 개혁해야 세상도 산다. 개혁하는 교회가 Protestants이다.

1543년 독일 쉬파이에르에서 모인 신성로마제국 국회에 제출한 이 논문의 목적은 교회 개혁의 정당성과 필연성을 밝히는 것이다. 이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서언
1장 본서의 과제
2장 그리스도교의 기초
3장 진실한 예배와 잘못된 예배
4장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
5장 성례전
6장 교회의 통치에 관한 제 문제
7장 개혁운동의 필요
8장 교회의 규율
9장 교회의 일치
10장 개혁운동의 긴급성

크게 보면 다음 네 가지 내용이다. (1) 현실 교회의 타락상 진단:  기독교의 진리와 하나님 예배와 인간의 구원과 관련된 주요 교리들이 거의 다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고, 교회의 통치가 광적인 폭정으로 변해 있는 영적 암매의 상태이다(2) 참된 교회의 회복을 위한 적합하고 유익한 치료책은 교회 본질로 돌아가는 개혁이다(3) 점진적 개혁이 아니라 즉각적 개선이 필요한 급박한 교회 상황에서, 교회 분열과 혼란의 책임은 타락한 로마 교회에 있다. (4) 카알 5세 황제에게 탄원하는 말.  

(1) 타락한 교회의 현실

예배

예배는 기독교의 영혼이다. 교회에서의 예배만 예배가 아니라 일상 생활 예배가 포함된다. 성경이 가르치는 참된 예배, 곧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는 하나님을 모든 좋은 것의 유일한 원천으로 인정하고 그분에게만 의지하는 것그리고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고 헌신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대 로마교회의 예배는 말로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모든 좋은 것을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 실상은 그와 달리, 하나님의 영광을 약탈하고, 다른 곳에서 구원을 찾는타락한 거짓 예배이다. 우리의 연약함을 알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겸비한 자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자의적으로 무엇을 덧보태거나 빼버리는 제 뜻대로의 예배는 정작 그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 인정되지 못하는 허망한 예배이다.

기도

예배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기도에서 교회 예배의 허망함이 잘 드러난다. 기도하는 자의 마음 가운데 굳건하게 세워져야 할 하나님과 그 약속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고, 그 신뢰의 유일한 기초인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대신에 무수한 인간 중보자들, 곧 마리아를 비롯한 수호 성인들을 헛되이 의지하여 기도를 드리고 있다. 성경의 가르침이 희미해지니, 성도들은 하나님의 규례를 알지 못하고 인간의 생각을 따라가게 되었고, 그 결과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는 믿음 대신 성상숭배가 만연해 있다. 이방인들의 감각적인 우상숭배에 빠져들어 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의 참된 의미를 바르게 가르치고 배우지 못한 결과, 하나님이 폐지하신 유대교의 전례들이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파고 들어왔다.

회개

생명에 이르는 회개 역시 마찬가지 상태다. 옛 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으로 변화되기 위한 참된 회개를 간과한 채, 교회는 금욕과 철야와 세상의 초등학문에 노력을 기울이는, 육체를 통한 외적 훈련방식에만 머물러 있다.

하나님은 거짓으로 창조된 예배를 거절하고 정죄하며 저주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단순한 복종가운데 두기 위해 우리에게 말씀의 멍에를 씌우셨다. 이 멍에를 벗어버리고 우리 스스로 만든 것을 좇아가는 것은, 자신을 즐겁게 할지는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무익한 오물과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

구원의 교리

구원의 세 단계는 다음과 같다, 1) 비참(Misery): 자신의 비참에 대하여 깨닫고, 자책하며 근심하고 떨면서 치유책을 구하는 단계. 2) 구원(Deliverance): 그리스도의 지식으로 세워지는 단계; 그리스도의 능력을 깨닫고 그에게 구원을 구하는 단계. 3) 신뢰(Trust): 그리스도 안에서 의와 생명을 소유한다는 확신, 확고하고 굳건한 신뢰로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단계.

교회의 영적인 형편은 원죄에 대한 이해에서 성경적 이해가 사라지고 천박해져 있다. 모든 대학에서 가르친 칭의론은, 하나님의 은혜가 행위에 의해 얻어져야하며, 영생도 행위에 의해 획득되어야하고, 선행의 도움 없는 구원의 확신은 경솔하고 당돌하며, 하나님과의 화해는 보속에 의한 것이지 값없는 사죄 때문이 아니며, 따라서 구원에 합당한 자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공로의 값없는 전가가 아니라 선행이라고 가르쳤다.

교회의 왜곡된 경건은, 우리로 하여금 아바 아버지로 부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불안한 양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교회 개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거하여 그런 두려움에 기초한 중세적 경건을 물리치고,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은혜와 평강을 회복시켰다.

성례

인간의 전통에 의하여 덧붙여진 다섯 가지의 거짓된 성례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두 성례조차도 무섭게 오염되었다. 세례는 불필요한 수많은 첨가물로 그 본질이 가리워졌고, 성찬 역시 여러 부속물이 첨가되어 변질되었다. 그 결과 말씀에 기초한 성례가 주술적인 것으로 왜곡되었고, 표징이 상징하는 것을 하나님을 말씀에 맞추어 설명하는 성례의 기본적인 성격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성례가 가리키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는 사라지고, ‘눈을 즐겁게 하는 무익한 상징만이 남은 결과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도하는 성례의 참된 기능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교회 정치

무엇보다 말씀의 사역자들이 사라졌다. 건전한 교리로 교회를 세우도록 임명된 감독과 목사의 직분이 어느 듯 실종되었다. 주교들이 말씀을 수종하는 본연의 임무를 등한시하고 행정가로 변신한 것이 교회의 타락을 알리는 심각한 징조이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악한 두 가지 관습인 복수성직록(pluralism)과 부재성직자제(absenteeism)가 만연해 있다. 고대 교회의 여러 공의회에서 거듭 규정한 대로, 한 사람의 주교가 한 주교구만을 담당하여 사역해야 하는데, 교구의 재정적 수입에 눈독을 들인 자들이 갖은 방법으로 교회법을 우회하여, 여러 곳의 주교구를 관장하고(복수성직록), 제대로 신학교육을 받지 못한 무식한 신부들을 고용하여 자신이 직접 돌보지 못하는 지역에 목회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게 함으로써(부재성직자제), 성도들을 돌보는 목양 사역을 그 기초부터 붕괴시켰다.

그 결과 목양을 담당하는 목회자들은 종종 탐욕과 착취, 오만과 잔인함, 겉으로는 독신을 자랑하지만 그 이면에는 음란함으로 가득 차 있어 윗물부터 썩어 버렸다. 그런데 이 모든 악습들을 고쳐야 할 권한과 책임을 가진 교황청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위반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가 제기되지 않거나 중벌이 가해지지 않는 반면, 인간의 법규를 어긴 행위에 대해서는 죄에 대한 최고의 대가가 요구된다.”고 말한다. 교회가 이러한 폭정의 멍에로 억압당하고 있는 데도, 누군가 이에 대하여 한 마디라도 하면 그는 즉시 이단으로 정죄되고 만다. 그 결과 교회는 스스로 개혁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2) 치료책

모두에게 분명한 사실은, 우리 쪽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을 읽고 무지의 깊은 흑암에서 나오도록 격려하고, 그 성경을 바르게 이해시키기 위하여 부지런히 애쓰며, 꼭 알 필요가 있는 기독교 교리 조항들을 즐겁게 밝혀 주었다는 점에서, 교회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습니다.”

모든 개혁자들을 대표하여 칼빈은 황제에게 근본적인 치료책인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을 제시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믿고 고백하고, 성경이 규정하는 대로 예배와 성례를 집행하고, 성경의 빛에 따라서 교회를 조직하고 다스려 나가는 것이 치료책이다.

성경의 권위와 충족성을 표현하는 오직 성경만으로써(sola scriptura)의 원리에 따라 칼빈은 교리에 대한 처방, 성례에 대한 처방, 그리고 교회정치에 대한 처방을 차례로 언급한다.

예배는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만을 붙잡고 회개를 권면하는데, 그것이야말로 성경에서 규정한 확실하고 무오한 예배의 방법이다.

형상숭배와 성유골 숭배는 어리석다. 거짓된 예배를 옹호하는 거짓 선지자들은 의식 자체만을 고려하는 외적 예배를 중요하게 강조하는 반면, 하나님은 마음의 믿음과 진실을 감찰하신다.

예배의 의식은 신앙과 기도와 찬미를 순수한 실천하는 방도이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래로 철폐된 의식들을 다시 도입하여 교회를 속박 아래 두었는데, 성경이 가르치는 예배의 참된 교리에 따라 그런 거짓된 형식을 벗어버려야 한다.

구원의 확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의 충족함을 부인하고 선행과 공로를 강조해 왔다. 자유의지와 선행, 행위 공로, 구원의 영예, 양심의 평안, 죄의 대속, 선행의 보상을 논한다.

성례에 대한 처방에서 세례와 성찬과 미사에 관하여 다룬다.

교회 정치에 대한 처방에서는 우선 성직자의 자격에 관하여, 그 다음에는 교회 법령에 관하여 잘못된 점들을 지적하고 그 개선책을 제시한다.  

(3) 교회 개혁의 필요성

구약의 엘리야와 신약의 그리스도의 사례에서 보듯이, 혼란을 일으킨 책임을 교회 개혁자들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로마교회의 비난은 잘못된 것이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징벌을 선포한 선지자 엘리야가 아니라 그 공의로운 징벌을 자초한 아합 왕이었듯이, 타락한 교회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올바르게 바로잡으려는 노력에서 빚어진 혼란의 책임은 바로 로마교회 당국에 있다.

개혁의 방식: 예배와 권징뿐 아니라 교회재산의 관리와 같은 사안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교회의 일치라는 중요한 주제는 교황의 수위권의 쟁점을 다루어야 한다. 

(4) 카알 5세에게 탄원하는 말

누가 교회를 개혁할 수 있을까? 먼저 모든 그리스도인의 책무이다. 공의회를 통한 교회 개혁의 역사도 있다. 그리고 카알 5세 황제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세속 권세이므로 교회 개혁의 책무를 지닌다.

우리는 이미 시작한 일에 대하여, 그리고 이제껏 진척시켜 온 일에 대하여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주장을 신실하고 오류 없이 증언하십니다. 우리가 전파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라는 것을 우리는 확신합니다. 우리의 사역이 진정으로 세상에 유익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 유익을 실현시키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에서조차 우리는 승리자일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죽음을 통해 더 나은 삶으로 가는 확실한 통행증을 얻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가 흘린 피가 (지금 사람들에게 경멸 당하는) 하나님의 진리를 전파하는 씨앗이 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상은 다음 김진홍 박사가 올린 글(2016)을 참고, 요약, 수정한 것이다. ctmnews.kr/news/view.php?no=402 

논문의 전문을 보려면

칼뱅의 논문 영어 번역문: www.swrb.com/newslett/actualNLs/NRC_ch00.htm

 

The Necessity of Reforming the Church (1543)by John Calvin

 

www.swrb.com

한글은 김산덕 교수 번역이 있다.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7154413

 

교회 개혁

가톨릭 신자였던 카를 5세가 연속으로 제국회의를 개최했던 진짜 이유는, 종교개혁가의 마음을 되돌이켜 로마 가톨릭교회와 화해하게 함으로써 결국 신성로마제국의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기 ��

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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