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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목사, 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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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회 난제 1 한국(장로)교회의 난제 1통합 교단만 보아도 목사 수는 팍팍 늘고, 교회 수는 제자리이다. 다른 교단도 마찬가지.교인 통계는 넣지 않았지만 감소세가 뚜렷하다. 교인 수가 가파르게 줄고 있다. 단순 해결책은 없지만 그래도 한 마디.1. 몇 년에 걸쳐 신학생을 절반으로 줄이고 (신학교 운영을 위해서 그 절반 수는 기존 목사 재교육으로 대신). 재교육에서 상당수 목사를 다른 직업으로 갈 수 있도록 직업 교육을 한다. 2. 기존 신학교와 교수 수도 점차 줄인다. 이들도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몇 년 간 직업 교육을 받게 지원한다. 3. 목사 안수를 매년 줄여 나간다. 4. 60대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목사 은퇴 나이를 65세로 하고 세습은 반드시 금한다. (난제가 많지만, 이 법을 시행하는 해부터 5년 간..
1971 목사 계층 분화: 도시 중산층 목사, 농촌 목사, 도시 빈민 목사 1971년 목사라는 직업, 두 가지 유형으로 분리되다 도시의 중형 교회 중산층 목사 vs 시골의 작은 교회 가난한 목사 모이는 도시 교회의 군림하는 목사 vs 이농으로 흩어지는 시골의 섬기는 목사 도시에서는 사모의 치맛바람 vs 시골에서는 사모의 몸뻬 봉사 도시 월 평균 20,000원 월급 vs 시골 교인 50명이 되어도 월급 4,000원 해방 이전 초기 목사와 시대에 부응한 목사들 이들은 양 떼의 목자요 종으로 전도인들이었다. 지식이 뛰어나지 않았으나 투철한 사명감과 뜨거운 전도열이 있었기에 한 지역 교회 지도자로서 손색이 없었다. 그들은 민족주의자요 문명의 선구자로서 시대의 요구에 부응했다. 길선주 목사를 필두로 시대에 부응하는 목사는 불가피하게 이용도를 낳아 명맥을 이어갔고 해방 후 분단 상황에서 ..
1970 목사 월 2만원 봉급에 여대생에 인기 없는 직업 수입 적고 인기도 없는 목사라는 직업, , 1970년 12월 14일.월 봉급 2만원으로 5인 가족 부양하루 수면 6시간에 휴가도 없이 쥐꼬리 월급지난 15년 간 신도수는 3배 증가했으나, 목사 봉급은 제자리모 여대 졸업생 600명 중 목사와 결혼한 자는 1명20개 직업 중 인기도는 17위 [당시 이발사 수준]--이런 푸대접 결과 돈을 밝히는 성공한 목사들이 70년대 후반부터 등장했으니, 일종의 revenge?지난 50년 목사들의 성공은 다시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1926 한국 기독교 실패 원인 1926년 서울의 감리회협성신학교 학생들은 교회의 실패 원인을 다음과 같이 중요도 순서로 정리했다. “Christianity in Korea,” Korea Mission Field (July 1926): 150-151.​1) 교파주의. 서구에서 교파주의 존재 이유는 있으나 동양에서 교파주의로 기독교를 소개하고 선교지를 분할함으로써 하나님 나라가 아닌 교파 교회의 성장을 추구. 기독교 대의를 손상시킨 것이 대실수. 2) 기독교 사역자들의 위선과 외식. 이들은 외적 성장을 추구하고 명예와 물질적 보상을 위해서 일한다. 3)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 4) 부자나 사회적 명사인 교인이 비도덕적 행동을 해도 명예를 보호해 주는 관례. 5) 시대에 맞는 기독교 서적의 부족. 6) 교리와 신조의 지나친 강조로 실..
1961 광나루 장신 광나루로 옮긴 장신대의 모습공중 촬영, 1961허허벌판인 강남으로 건너가는 광진교가 선명하고, 학교 주변에 집이 별로 없다. '광나루'라는 지명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신학교가 남북을 잇고 새로운 공간으로 나아가는 구원의 넓은 다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을 계승하고 있을까? Aerial view of Presbyterian College and Theological Seminary (Tonghap) after re-locating to Seoul at Kwangjang Dong, Kwangjin Ku, 1961 @Moffett Collections, P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