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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1900s

애국가 가사가 일본풍이라고?

2021년 5월 13일자 <연합뉴스>에는 경희대 법무대학원의 강효백 교수의 주장을 요약한 임형두 기자의 글이 실려 있다. 제목도 선정적이다. "애국가에 숨은 '친일코드'"…"새 국가 제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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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에 숨은 '친일코드'"…"새 국가 제정해야"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지금의 '애국가(愛國歌:안익태 작곡·윤치호 작사)'는 그 정체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곤 했다. 친일파가 만들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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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문제가 많다. 세 가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간단한 사실만 거론함으로써 이 저자의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지 살펴보자.

1. 바람서리란 말이 1880년 이전에 사용되지 않았던가?

이 글의 저자 왈

'바람서리', '공활'과 같은 용어도 일본풍이 다분하단다. '바람서리'는 오늘날 우리 일상에서 전혀 쓰지 않을 뿐 아니라 구한말 이전 우리 말과 글에도 전혀 없는 정체불명의 용어인 반면, 일본에선 '바람'이 일본인의 하느님이자 태양신인 아마테라스 다음으로 중시하는 태풍의 신 스사노오를 상징하고 경술국치 이후 '서리'로 바뀐 '이슬'은 일왕이 베푸는 은혜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나의 반박

참으로 얼토당토 않은 잡설이다. 바람서리는 풍상(風霜)의 우리말로 고려나 조선 시대 문서에 수없이 등장한다. 풍상을 견디며 살아온 우리 민족이다. 고려 조선 시대 문인들이 일본의 신을 섬겼다는 말인가? 조상을 욕보이는 글이다. 바로 취소해야 한다.

소결: 애국가의 바람서리는 風霜의 순 한국어로 고려 시대 이래 널리 사용된 용어이다. 일본의 신도 신들과 무관하다.

 

2. 한국에 무궁화(槿花)가 자생하는가?

이 글의 저자 왈‘無窮花'는 구한말 이전에 한국은 물론 중국에도 없었던 한자어로, 한반도에 무궁화 자생지가 전무한 데다가, 무궁화의 재배 가능지역도 휴전선 이남으로 한정돼 있고, 우리의 옛 시조와 민요에는 무궁화가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나의 반박 1

한반도에 무궁화가 자생하지 않는데, 어찌 최치원 이래 신라를 근화향(槿花鄕)으로 칭했는가? 발해에 대해서도 신라는 근화향이라고 불렀다. 한반도에 최소한 신라 시대부터 무궁화는 자생하고 있었다.

나의 반박 2.

고려 문집 補閑集(1254) 卷中 李學士眉叟使大金, 次韻漁陽懷古云에 근화가 등장한다. 고려의 문인 최자(崔滋)는 이인로의 破閑集(1260, 사후에 만들어짐)을 보충하는 문학비평서인데, 아래는 국사편찬위원회 웹페이지에서 검색하면 나온다.

원문: 次韻漁陽懷古云, ‘槿花低映碧山峰, 卯酒初酣白玉容. 舞罷霓裳歡未足, 一朝雷雨送猪龍.’  번역문: 학사(學士) 이미수(李眉叟, 이인로)가 금()에 사신으로 가면서 어양(漁陽)에서 옛날을 생각하다[漁陽懷古]시에 차운(次韻)하여 이르기를, ‘무궁화는 나직이 푸른 산봉우리에 비치는데, 아침술[卯酒]은 백옥같은 얼굴을 조금 붉히네. 예상(霓裳) 춤을 끝내도 즐거움이 족하지 못하더니, 하루아침에 우레와 비로 저룡(猪龍)을 보냈네.’ 라고 하였다.

이인로(李仁老, 1152~1220)가 금에 가서 어양(지금의 북경)에서 옛날을 생각하며 지은 시에 근화(무궁화)를 언급한다. 그 산이 고려 개성에 있는 산이든, 금의 베이징이던 부근이든, 무궁화가 지금의 휴전선 이북 기후에 자생하고 있었다.

소결: 무궁화는 과거에 槿花 등으로 표기했고, 한반도에 최소한 신라 시대부터 자생하였으며, 현 휴전선 이북인 개성이나 중국의 북경에도 산에서 자생하고 있었다. 시조나 민요에 없다고 하는데, 한시에는 엄연히 등장한다.

다른 부분도 거의 소설에 가까운 주장을 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도 그의 주장이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인지 알 수 있다.

3. 강효백 교수의 글에는 정작 일본어에서 온 근대어 투성이다. 

어떤 단어가 일본어에서 왔다고 해서 그것이 친일 코드를 숨겨 놓은 것이라면, 저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지금 사용하는 한자 단어 중에서 근대어/현대어/학술용어의 대부분은 일본어에서 왔다. 예를 들면 저자의 '법무 대학원'의 법무나 대학원은 일본어에서 왔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그는 이런 친일 코드를 심어 놓은 법무대학원에서 사직해야 한다. 

기사에 나오는 첫 문단을 보자. 

강 교수는 "애국가 첫 소절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처럼 소멸과 퇴행의 서술어로 시작하는 국가는 지구상에 없다"며 "바다와 물이 산보다 먼저 나오는 경우도 우리말과 노래에서 찾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다만 일본에선 바다와 물이 산보다 먼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 글의 내용은 차치하고, 그가 사용하는 소멸, 퇴행, 서술어, 국가, 지구상, 지적 등 일본어에서 온 단어들은 그가 심어 놓은 친일 코드가 된다. 겉으로는 친일을 비판하면서, 그의 논리대로라면 그는 친일파가 된다. 

애국가라는 말은 1890년대 이전에 없었다. 그러면 강 교수가 새로 '애국가'를 만들면 그 자체가 친일 용어이므로 친일 코드가 들어가게 된다. 이런 황당한 글쓰기를 하는 분은 처음 보는 듯하다.

참고) 아래는 1897년 8월 17일자 <독립신문>의 기원절 기사이다. 조선 개국 505년을 기념하는 기원절 때 배재학교 학생들이 부른 노래는 셋이다. (1) 축수가( 오백 여 년 우리 왕실 만세 무궁 도우소서)에서는 '무궁'을 사용했다.  (2) 무궁화 노래에서는 "우리 나라 우리 임금 황천이 도우사 임금과 백성이 한 가지로 만만세를 기뻐하여 태평 독립하여 보세"라 하여 가사에는 무궁화가 나오지 않지만 나라가 만만세 무궁하기를 노래했다. (3) '나라 사랑하는 노래' ㅡ곧 애국가를 불렀다. 아쉽게도 그 가사가 나오지 않는데, 당시 다양한 애국가가 지어지고 불러지고 있었다. 따라서 축수가, 무궁화가, 애국가가 1897년에 함께 불러지면서, 그 가사들이 모여서 지금의 애국가로 발전한다. 

 

아래는 1908년 8월 6일자 <대한매일신보>이다. 가사체로 된 "무궁화" 노래이다. 1890년대-1900년대 애국지사들은 무궁화가를 많이 불렀다. 그것이 발전하여 애국가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