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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1900s

기후변화와 역병과 교회

1902년 7월 13일 “3년 만에 비가 처음 제대로 왔다.”

서울에서 활동하던 초년병 선교사 웰번 부인의 일기에 나오는 이 한 줄을 읽고 나는 내 책 <한국기독교형성사> 제2장, "구세주: 정감록 파자와 기독교 종말론,"  메시아니즘과 한국 개신교를 제대로 쓸 수 있었다.
 
1900-1902년 3년간 중부 지방에 비가 제대로 오지 않아 수확량은 1/10로 줄었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고, 도적떼가 부자들을 습격했다. 세금이 걷히지 않자 고종은 매관매직을 늘리고, 탐관오리들은 호랑이보다 무섭게 곡식을 빼앗아 갔다.
살 수 없게 된 중부 지방의 농민들이 하와이 이민 열기에 몸을 의탁했다. 낙원이 있다네! 가보세!
1903년 보리농사마저 망쳤다. 곡식 값은 폭등했다. 정부는 월남에서 안남미를 수입해 풀었으나 역부족이었다. 귀리나 조로 연명해야 하는 농민들은 관리와 세금을 피해 농토와 집을 버리고 산으로 가서 화전민이 되었다.
엎친 데 덮친다고 1903년의 ‘역병의 해’였다. 콜레라와 천연두가 창궐하면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굶어죽은 자보다 전염병에 죽은 자가 많았다.
여기에 1904년 러일전쟁이 닥치자, 그야말로 계시록이 말한 네 마리의 말(馬)--기근, 역병, 전쟁, 죽음의 말--이 먼지를 날리며 달려온 형국이라 한국인은 묵시론적 말세를 맞이했다.
이상 기후로 가뭄과 홍수 등 온갖 재해가 닥친다. 역병이 퍼졌다. 탐관오리들이 판을 친다. 나라가 흔들린다.
 
120년 전 교회는 부흥 운동과 ‘애국계몽’운동으로 나라의 방향을 제시했다. 웰번의 배천 부흥과 하디의 원산 부흥은 기후변화, 가뭄, 역병, 전쟁의 와중에 일어났다.
120년 전 교회는 부흥 운동과 ‘애국계몽’운동으로 나라의 방향을 제시했다. 한반도를 먹으려는 제국들의 침략 앞에 하나님 왕국을 세우려는 이들이 성령으로 거듭나 새 나라를 세우려고 기치를 높였다. 교회 옆에 학교, 학교 옆에 진료소를 세우고,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고, 교육하고, 질병을 치유했다.
120년이 지난 지금, 한국교회는 여전히 사람도 있고 돈도 있다. 그것으로 무엇을 할지는 자명하다. 교회가 아니라 나라와 사회와 고난 당하는 자들을 위해서 다 써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