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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평양과 기독교

파친코 8부: 기억 담론

시즌 1을 보고: 어떤 기억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가?

줄거리

고한수와 노아: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힘(활과 화살)과 돈(동전)을 가진 성공자가 되려면 교육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올라가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 = 사회진화론자로 지배층/식민제국의 논리를 수용한다. = 그러나 지배층에 들어갔다고 착각하다가 결국은 소외된다.

백이삭과 모세: 병골이지만 오래 살아남기(생존)을 추구하고 다같이 잘 사는 세상(공생)을 꿈꾼다. 그러나 식민 제국주의자들은 한국 민중들이 힘을 합해 신세계를 상상하는 싹을 잘라버린다. 기독교 사회주의자로 기운 백 목사는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서 죽는다. 형의 길을 따라갔다. 모세는 돌찬치에서 붉은 실타래를 집었기에 장수한다. 함께 살아남는 게 구원(모세)이다.

하세가와: 일본노동총연맹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는 일본인 공산주의자. 백이삭과 연관.

김선자와 백이삭: 좋은 남편, 좋은 아빠, 훌륭한 목사 백이삭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채 오사카 역전에서 김치 장수로 생존을 모색한다. 광장에서 일본어로 원조 김치를 판다.

백모세와 백솔로몬: 모세는 아들이 차별이 없는 미국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미국도 인종차별의 땅, 솔로몬은 외친다; “아빠의 꿈은 저에게 너무 작아요.” 솔로몬은 비자가 만료되어 일본에 남아 아버지로부터 파친코 사업을 배운다.

하나와 솔로몬: 하나는 일본에서 따돌림과 차별을 당하는 하류층 여성 독신이다. 차별과 배제가 일상화된 일본에서 상류층 남성들로 AIDS에 걸린 모습은 향후 잃어버린 30년을 보내게 되는 일본을 상징하는 듯하다.

드라마 후반부는 갑자기 다큐로 변해 당시를 경험한 한인 할머니들의 일본어 인터뷰가 나온다. 2021년 촬영이다. 한국어를 잊어버리고 일제 시대 고생한 이야기만 기억한다. 감와츠가 할머니만 웃는 얼굴이다.

 

나의 생각

시리즈 1의 결론은 강력하지 못하다. 역사가 우리를 망친 기억만으로는 우리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피해자가 피해만을 이야기할 때는 가해자를 용서하지 못하고 배제의 습관에 빠져 가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민진이 아니라 한국에 사는 작가가 썼다면 위안부가 된 복희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강조했을 것이다. 피해자의 고난에 대한 기억만 있다면, 그것은 칼이 되고 활과 화살이 되어 상대방을 공격하고 죽인다. 화해는 없다. 김민진의 원작은 피해자 코스프레를 넘어선다는 점에서 코리언아메리칸의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고, 그것이 이 작품이 세계인의 공감을 끌어내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파친코는 거기서 멈춘다. 코리언아메리칸의 멋진 기독교 소설이 될 수 있었는데 아쉽다.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인들이 생산한 문학은 어디까지 가서 노벨 문학상을 받았는가? 현재 기독교 신학은 20세기에 자행된(21세기에 계속되는) 학살과 인종 차별과 식민지 시대를 어떻게 기억하기를 원하는가?

기독교는 기억의 종교요 기억담론(역사해석)의 종교이다. “구원은 오직 기억 속에서만 발견된다.” (Ellie Wiesel). 그러나 선한 개인의 고난에 대한 기억은 피해자 집단에 의해 가해자 집단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라인홀드 니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1932). 이스라엘은 건국 이후 팔레스타인인에게 새로운 가해자가 되었다. “기억이라는 방패는 폭력의 칼로 쉽게 탈바꿈한다.” (볼프, 기억의 종말, 55)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어떤 역사를 써야 하며, 어떤 역사 소설을 만들어야 할까? 미로슬라브 볼프는 기억의 방법을 네 가지로 제시한다. 그 근본 패러다임은 출애굽과 십자가 사건이 제공한다.

1) 무의미해 보이는 고난사도 의미 있게 재해석할 수 있다.

2) 과거 악행에 대한 기억이 현재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지 못하게 한다.

3) 그리스도는 새 정체성과 새 가능성을 준다. 새 가능성의 지평인 미래는 밖(하나님)으로부터 온다. 과거의 트라우마만 있으면 그런 미래를 부정하게 된다.

4) 가해자와 피해자의 화해. 과거의 망각이 종말에 이루어질 완전한 치유이다.

이방 나그네로 압제를 받았던 히브리 노예들이 해방되고, 500년 양반의 압제를 받았던 천민 백정이 1895년에 해방되고, 80-90년 일본에서 차별을 받았던 선자 세대의 할머니들이 애플티비에서 담담히 과거를 회상한다. 하지만 동경 번화가에서 집을 팔지 않는 할머니처럼, 아직 자이니치는 용서와 화해의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즉 아직 구원에 이르지 못했다.

그 길은 멀고 험한 광야의 길이다. 기억의 벙법 중에서 1번과 2번이 김선자와 백모세와 백솔로몬의 이야기이다. 오히려 1세대인 백이삭은 3번을 추구하다가 죽는다. 그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기억하는 것이 4번을 향한 가능성을 열어 준다. 동족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산 백이삭의 모습. 모세와 솔로몬이 그 모습을 기억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재일한국인, 자이니치의 구원(부활)이 달려 있고, 파친코 시리즈 2의 진정한 성공이 달려 있다. 솔로몬이 호텔 딜에서 실패하고 미국 생활을 접고 다시 자이니치의 세계로 돌아온 것이 자이니치 3세에게 새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시공간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는 요시이 마모루 대표를 만나 할머니의 집을 사서 복수하자고 딜을 시도한다. 죽은 하나를 기념하려는 생각도 하면서.

과연 솔로몬은 자이니치 1세대 이삭의 삶, 2세대 노아/모세의 삶 중에서 무엇을 기억해야 구원에 이를 것인가? 7회에서 솔로몬의 잘못된 기억을 바로 잡아주는 1세대 할머니 선자의 역할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