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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평양과 기독교

[파친코 7부] 관동대지진이 냉혈한 고한수를 만들다

에피소드 1 제7회 

192391일 동경대진재가 발생, 일본인 10만 명이 사망한다. 야쿠자 료치의 사무실에서 회계를 보던 한수의 아버지(고종열)가 사망한다. 지진 첫날 네기시 교도소가 파괴되어 불령 조선인들이 탈옥하여 거리로 나와 약탈하고, 여자들을 폭행하고, 우물에 독을 넣는다는 소문이 나돈다. 폭도들이 조선인 집들에 가서 방화하고 산 채로 태워서 살해한다.

홈즈 씨 가정

일본에서 거부로 사는 홈즈 씨 부부. 문제는 아들이 변변치 않아 공부를 못해 한수를 수학 과외선생으로 채용하고, 아들 앤드류는 예일에 가도 공부를 못하니 한수를 미국에 데리고 가자고 한다.

고종열과 아들 한수의 대화: 제주 방언을 현대어로 옮김

아버지는 셈이 빠르다. 이민자는 셈이 빨라야 산다. 아버지는 한수가 수학도, 영어도 잘 하니 출신을 묻지 않는 미국에 가서 성공하라고 한다.

종열: 너는 과외선생이지 심부름하는 사람이 아녀.

.....

종열: 사람은 한 가지만 졸 바로 하면 된다. 딱 하나.

한수: 그럼 난 뭘 잘 하면 되는데요? 버지는 그 한 가지가 주산이꽈

종열: 나가 잘 하는 것은 놈들에게 돈 벌어주는 거여.

한수: 우리 돈도 좀 벌어주면 안 되요? 그럼 난 뭘 잘 하면 되는데요?

종열: 그게 무신 뭐, 모를 심는 것처럼 정해지는 즐 알았느냐? 그건 니가 하고자 하건 안 하던 그런 것은 그냥 정해지는 거여.

종열: 넌 잘 난 놈이여, 아빠보다. 너 덕에 여기서 한번 벗어나 보게.

한수: 홈즈 씨 그 애, 앤드류가 나보고 미국에 같이 가자고 했수다. 예일대 가자고.

종열: 학비 대 준대?

한수: 아니.

종열: 그는 그런 집안에 안 태어났으면 사람 구실도 못할 놈인데. 우리 아들은 이렇게 잘 났는데. 아버지를 잘 못 만나..... 

한수: 근데, 아버지, 미국에서는 우리 같은 사람도 출세를 할 수 있단 말이죠?”

종열: “, 우리 같은 사람. 우리의 꿈과 희망을 판 돈으로 걸게 해 놓고, 그런 말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속여 먹은 거지.”

종열: 미국, 가라. 보는 눈을 한번 높여 보라. 한수야, 넌 내가 생각도 못할 큰 기회를 잡은 거여.

한수: 아버지는 우린 하나라고 하셨어면서.

종열: 저녁 하늘에 별이 두 개 있지. 여기서 보면 ᄄᆃᆨ 붙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서로 아주 멀리멀리 떨어져 있지. 그렇지? (두 사람은 웃는다.) 니가 미국으로 떠나면 아버지랑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크게 보면 밤하늘의 별처럼 둘이 붙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그런데 한수 아버지는 애인 기생에게 200엔을 빌려주었으나 갚을 수 없자 오야붕의 돈을 훔친다. 이를 발견한 오야붕은 그날로 돈을 갚으라 한다. 애인이 다른 남자에게 그 돈을 주었기에 다시 돌려 받을 수 없게 된다. 한수는 홈즈 씨에게 돈을 빌리려고 하지만 아버지는 그러다가 미국에 들어가지 못할까 염려하여 반대한다. 아버지는 여기 일은 자기에게 맡기고 아들은 이곳 사람처럼 되지 말고 미국에 가서 출세하라며, 마음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지우라고 말한다. 남겠다는 아들을 보면서 종열은 화를 내고 주먹으로 아들을 때리 패면서까지 미국으로 가라고 강권한다.

주인 야쿠자 료치는 사정을 듣고 아들을 미국에 보내야 한다고 간청하는 종열을 무시한다. 한수는 아버지 빚을 갚기 위해 야쿠자 일을 하려고 한다. 아들을 엮이지 않게 하려고 종열이 몸부림칠 때 지진이 발생한다. 1210. 쓰러진 아들을 구하려던 아버지 종열은 무너지는 집에서 사망한다. 한수는 홈즈 씨 집에 간다. 홈즈 씨는 가족을 두고 먼저 항구로 가서 피신한다. 홈즈 부인과 아들 앤드류와 함께 한수는 항구로 향하지만, 도중에 여진이 발생하여 홈즈 부인과 앤드류는 사망한다. 한수는 앤드류의 시신에서 회중시계를 회수한다.

고한수

앤드류를 따라 미국에 가려던 꿈이 동경대지진으로 물거품이 되고, 어쩔 수 없이 야쿠자 료치의 집에 머물면서 그의 사무실에서 회계를 맡게 된다.

내 생각

이민자의 생활은 자연재해나 폭동으로 급변한다. 평소에는 잘 모르지만, 이민자의 운명은 지진, 폭동, 태풍, 홍수, 전염병 등 급변 사태에 취약하다. 보험 없는 인생이다. 현실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치지만 빚은 늘고 쓸 데 없는 데 마음은 빼앗기고, 어느날 파국이 닥친다.

30년 전 LA‘폭동때 코리어타운에서 수 천 개의 한인 가게가 불타거나 약탈을 당했다. 흑백 갈등 속에 한인들이 희생양이 되었다. 동일하게 동경 대지진 때 10만 명이 죽고 도시의 절반이 파괴되며 아비규환의 지옥이 되자, 폭도들은 한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들의 분노와 절망을 해소한다.

7부는 소설에 없는 내용이다. 1923년에 그런 일이 있어서 고한수가 야쿠자 밑에서 일하는 청년이 된 것은 나중에 그 친자인 노아가 회계를 잘 해서 일본인 농장주의 눈에 든 일, 수재로 공부를 잘 해 와세다대학교 영문과에 들어간 것,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꿈을 포기하고 시골에 들어가 조용히 은행인으로 사는 것과 연관된다.

고한수는 제주도에서 어부였던 할아버지를 이어 부산 어시장에서 거간꾼이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영도 처녀 선자가 임신하자 앤드류의 회중시계를 선자에게 준다. 회중시계는 미국에서의 꿈과 자유를 상징한다. 어쩌면 자신의 아들이 그런 인물이 되어 주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결국 그 일은 손자 솔로몬에게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미국은 자유와 평등의 파라다이스는 아니다. 앤드류와 같이 멍청한 아이도 부잣집 자손이면 기부입학으로 예일대에 입학할 수 있는 곳이다. 평소에는 레이디 퍼스트를 외치지만 지진이 발생하자 남편은 먼저 항구로 도망간다. 

역사는 우리를 망치고, 자연재해와 폭동은 지옥으로 몰아넣는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고, 이루지 못한 젊은 날의 꿈을 어떤 형태로든 이루어야 한다. 역사는 이민자에게 냉혹하지만, 자연재해는 더 가혹하고, 그 속에서 개인의 운명은 가족사와 긴밀하게 연관되면서 개인적 선택의 여지를 좁힌다.

7편은 제주도 방언, 영어, 일본어, 한국어가 이어진다. 언어가 섞이고 사람이 섞이고 문화가 섞이는 1920년대이다. 그만큼 역사는 복잡하고 인생도 복잡해진다. 국제화의 시작, 조선인들이 세계로 무더기로 나가면서 세계로 흩어지고, 세계가 조선으로 몰려들던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