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承晩博士는 渾身都是熱
金一善
이러케 鐘路를 거처서 청년회관을 오면 李박사 생각이 別로 간졀해짐니다.
정말로 公번 띄고 私心업고, 혼신이 도모지 열정 떵어리인 李박사! 그야말로 愛國愛民의 열렬한 志士요 烈士임니다.
일즉이 海州에서 생장하야, 자기 아버지를 쪼차 京城에 드러오기는 아마 16,7세이엿슬 듯함니다. 본래 漢文에 능한 그는 培材學堂에 드러가 영어를 중심으로 신학문을 학습하다가, 丁酉年頃에 徐載弼박사가 독립신문을 發刋할때에는 그 社에 논설기자로 드러가서, 독립이상의 고취에 盡力하얏슴니다.
독립협회라 하며, 만민공동회라 하면 더 말할 것 업시 近世의 조선에서 처음 닐어난 유일한 민간정당으로서, 당시에 宮中府中을 蕭淸하고, 민간사회를 혁신하기에 얼마마한 활약을 하엿는가하는 것은 이제 군더덕이로 말할 것 까지도 업는 바이어니와, 李박사는 그때 겨우 22,3세의 年少로써, 일즉히 독립협회에 관계하고 만민공동회를 지도하야, 소위 황국협회의 褓負商軍으로 더부러 정면격투를 행하얏슴니다. (戊戌己亥年間의 일), 그 당시에 내가 아조 實見한 광경이 잇거이와, 兵丁, 난민을 어울너서 수천으로써 算하는 平凉子軍(褓負商)이 제각각 흉기를 들고, 새문 밧그로부터 貞洞을 넘어, 大漢門쪽 길로 덥허올 때에, 박사가 홀홀단신으로, 그놈들과 마자싸와, 死生을 직결하던, 그의 극적 활약장면은, 아아 무엇이라 말삼하면 可하오릿가. 엇잿던 박사는 그와가티 열렬하엿스며 대담하엿슴니다. 급기야 반동파가 勝을 制하고 협회측이 敗를 重하며 박사 자신까지 拘囚의 一人이 되는 때에는 끄러올으는 비분을 스사로 이기지 못하야, 가만이 재외동포와 연락하야, 六穴砲로써, 獄吏를 쏘고 감옥을 탈출하다가, 다시 잡히여 종신징역의 선고를 밧고, 鐘路拘置監에서 약 7년의 세월을 신음하던 중<17> 후 乙巳年인가, 日露의 巤雲이 닐던때. 이러케 저러케 출옥되야, 미국으로 갓습니다.
미국가서는 곳 공부하기를 시작하야, 문학, 철학, 신학과에 대한 학위를 엇고, 後庚戊 이후에 귀국하야, 잠시 鐘路청년회 학관감으로 잇다가, 미국 監理敎 연회에 출석하는 하리스 감독과 가티, 다시 미국으로 드러갓는대, 그때 監理敎의 연회석상에서, 하리스감독의 친일에 대한 추태를 공격하고 크게 조선을 위하야 변명함이 잊섯던 바, 그런 관계 저런 관계로 해서 다시 조선에 도라 오지 못하고, 오날까지 米洲지방에서 멀니 고국을 위하야 일하고 잇슴니다. (이후 事은 더 말 아니 하게슴니다)
박사는 금년에 51세인가 2세인가 한데, 전하는 바에 의하면 벌서 백발이 星星하다고 함니다. 30년 苦鬪가 그만큼 박사를 早老케 함이겟지오.
박사의 집안에는 다른 가족이 업고 오즉 어린 아들 한사람이 잇섯는대, 불행하게도 그조차 미국에서 불행하고, 지금은 다못 박사 한 몸이 해외만국에 奔走하을 뿐임니다.
지금은 모르겟슴니다만은 박사의 사상은 그때 조선에 잇서는 매우 급진적이엇슴니다. 독립협회 당시 그때브터 共和政體를 생각하엿슴니다. 일어한 일이<18> 잇섯슴니다. 그가 미국에 갓다가 다시 본국에 도라와 청년회관에서 처음으로 연설을 할 때에 세 가지 시원한 것이 잇다는 말을 하여서, 한참 문제가 되여섯슴니다. 세 가지 시원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첫재 님금업서진 것, 둘재 양반 업서진 것, 셋재 상투 업서진 것이라고 하엿슴니다.
가만히 머리를 숙이면, 그 중키나 되는 키에 똥똥한 몸, 근심하는 듯한 얼굴, 악물은 듯한 입모습-박사의 全容이 뵘니다. 어대까지 公번되고도 열렬한 박사(박사 一身이 都是熱 어대까지 그리워 짐니다.(談)
--출처
잡지명 | 개벽 제6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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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1925년 08월 01일 |
기사제목 | 밧게 잇는 이 생각, 異域風霜에 氣軆安寧하신가 |
기사형태 | 대담·좌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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