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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3.1운동 (1919)

1919 만세 반석 열리니

찬송가 한 장으로 만세 삼창


1919년 3월 8일은 토요일이었다. 

대구 서문시장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미리 전달 받은 독립선언문이 뿌려지고 800명 정도가 시위에 참여했다. 


역과 주요 지역마다 출동한 경찰과 헌병이 깔렸다. "만세"를 외치는 자는 사살해도 좋다는 명령이 내려졌고, 역의 확성기에서는 이 명령을 계속 반복해서 내보냈다. 삼엄한 경계 속에 토요일 밤이 찾아 왔다. 


3월 9일 이튿날 주일 아침 

한국인 목사들이 모두 구금된 상태에서 예배를 인도해야 하는 대구의 브루엔 목사는 예배 때 어떤 찬송을 부를까 잠시 고민했다. 침울한 교인들을 격려하되 관심을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는 찬송을 찾았다. "십자가 군병들아"가 우선 떠올랐다. 그러나 부적절해 보였다. 이어 "Rock of Age" (만세 반석 열리니)가 떠올랐고, 그보다 더 좋은 찬송은 없다고 판단되었다. 그래서 회중에게 알리고 찬송가를 펴서 보니, 아뿔사, 첫 구절이 "만세"였다. 그래도 이미 부르자고 했으니 함께 부를 수밖에 없었다.  


1절, 2절, 3절을 부른 후 4절이 되자  교인들은 두려움 없이 목청껏 외쳤다.  


"만셰 반셕 열니니 내가 드러갑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국의 독립이 열릴 줄 확신했다. 대구에서 "만세" 제창은 3월 8일 서문시장에서 먼저 이루어지고, 이어서 한국인 목사가 없는 대구 교회 안에서도 이루어졌다.  두 손을 들고 만세! 만세! 만세! 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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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운동 100주년이다. 교회 참여를 강조하는 논문과 기사가 넘친다.
그러나 독립만세운동의 성격이 왜 기독교적인지 분석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100년 전 어떤 기도를 하고,
성경을 어떻게 읽고, 어떤 찬송을 부르며
어떤 정치 신학을 가지고 임했는지
왜 기독교 민족 운동인지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지 않으면
과거처럼 호교론적 역사가 되어
한국사 교과서에 한두 줄도 차지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