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의료, 간호

에스더 쉴즈: 세브란스 간호와 한국간호협회의 산모

세브란스 간호를 세운 에스더 쉴즈


한국 간호의 발전을 위해 40년 간 독신으로 봉사하고 1936년에 은퇴




에스더 쉴즈(Esther Lucas Shields)는 1868년 12월 2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농촌 켈리타운쉽에서 해외선교와 인디언선교를 지원하던 경건한 기독교인 부모 아래 태어나 바르게 자랐다. 1891년 필라델피아종합병원 간호원양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3년간 병자를 간호하던 중, 해외선교 권고를 받고, 부르심이 올 때 가기 위해서 준비했다. 그러나 다시 몇 년의 시간이 지났다. 시간이 그냥 흘러가고 있다고 느끼던 어느 날, 선교에 대한 설교를 들은 그는 동양의 한 나라에 가서 여성과 어린이를 돕기로 결심하고 바로 뉴욕의 북장로회 해외선교부에 지원서를 보냈다.

 

쉴즈는 제컵슨 후임으로 한국에 임명되었고, 1897년 10월 필드 의사와 함께 제중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병원의 열악한 환경에서 몸이 허약해진 쉴즈는 1902년 목포에서 잠시 휴가를 보낸 후 1903년 선천 지부로 전임되어 1905년 7월까지 전도 사역에 참여했다. 이어서 미국에서 첫 안식년을 보냈고, 새로 개원한 서울의 세브란스병원에 돌아와 1906년 9월부터 일하기 시작했다.

 

쉴즈는 1906년 9월 세브란스병원 간호원양성학교를 설립하고 북감리회 보구여관의 에드먼즈와 협력하여 간호 교육 발전에 힘썼다. 쉴즈는 1908년 3월 20일 선교사 간호원들로 구성된 재한졸업간호원협회를 조직했다. 1910년 6월 10일 세브란스병원간호원양성학교 제1회 졸업생 김배세를 배출한 후, 동창회를 조직하여 한국인 간호원의 친목과 교육을 도모했으며, 간호학 교과서 편찬에도 노력했다. 그의 제자들은 한국의 여러 병원에서 수간호원으로 일했다. 쉴즈는 1935년에 은퇴했으나 1938년 12월까지 세브란스병원에서 봉사하며 30년 이상 세브란스병원과 한국의 간호학을 든든히 세웠고, 산부인과 발전에 공헌했다. 1939년 2월 펜실베이니아 고향에 돌아갔으며, 1940년 11월 8일 루이스버그에서 72세로 사망했다.

    

한국 근대 간호의 대모 쉴즈는 어떤 지도력을 가졌을까? 


첫째, 쉴즈는 다른 사람을 앞세우고 그를 돕는 지도자였다. 그는 세브란스병원간호부양성소 초대 간호부장 겸 소장이라는 직함을 계속 유지하기보다는 적임자 후배에게 기꺼이 여러 번 소장 직을 양보하며 도왔다. 자신은 마음이 여려서 학생들을 강하게 훈련하고 훈육하는 데 적임자가 아니며, 밤 늦게까지 홀로 병자를 간호하며 영적 필요까지 채워주는 데 은사가 있는 자로 여겼다. 쉴즈는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지 않고, 자신의 장점에 집중했다. 그는 말년에 새로 개설된 정신 병동에서 환자들과 자주 대화하며 위로했다.

 

둘째, 중년이 되면서 강건하게 된 그는 간호부장으로서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협력과 연합 사업을 믿었던 그는 교파를 초월해서 일했다. 1925년 조선간호부회를 재조직하고 초대 회장으로서 간호부의 실력 양성, 지위 향상, 복지 증진을 위해서 헌신했다.

 

셋째, 쉴즈는 오래 참고 견디는 지도자였다. 그는 늘 질문했다. 많은 후배들이 질병 등으로 한국을 떠났지만, “왜 나는 이 땅에 오래 있는가?” 그는 40년 동안 한국인에게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남아서 자리를 지키겠다는 자세로 끝까지 독신으로 헌신했다. “일하라, 일하라.” 이것이 그의 표어였다. 하나님과 한국인을 위해서 쓰임 받는 삶, 이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끝으로 그는 늘 연구하는 지도자였다. 그는 스스로 공부하는 간호원이었고 “공부하는 간호원이 점점 증가할 새 먼저 있던 간호원들이 여러 방면으로 선한 일을 많이 행”하는 것을 기뻐했다. 그는 세계 간호학계의 새 논문과 책 가운데 한국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소개하고 교육했으며, 한국의 상황을 세계에 알리는 소통자의 역할에도 충실했다. 또한 40년간 한국 간호의 역사 자료와 사진을 정리하는 일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다. 프린스턴신학교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그의 앨범과 자료를 통해서 우리는 초기 역사를 알 수 있다.

 

자기 정체감, 동역자 의식, 인내심, 연구심을 지닌 쉴즈가 있었기에 오늘 한국 간호가 있다. 


http://www.nursenews.co.kr/Article/ArticleDetailView.asp?typ=3%20%20%20%20&articleKey=1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