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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승만

이승만 정권은 기독교 정권이 아니었다

이승만 대통령에  신화 1 

2015. 2. 28. 5:15 옥성득
 

다음 글을 비롯하여 그 글에 인용된 많은 한국교회사 학자들의 논문은 이승만 대통령의 레토릭을 그대로 수용하여 그가 '기독교 국가'를 만들려고 했다고 주장하며, 여러 교회에게 준 불하 특혜와 기독교 방송 인가와 군목 제도 허용, 그리고 초대 국회와 내각의 기독교인 비율, 이 대통령 재임 기간의 기독교 교세 성장 등을 그 증거로 든다.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7062

그러나 이 정도로 '기독교'가 국가 이념의 하나로 되었다거나 기독교 국가 건설을 추진했다고 보기에는 허약하다.

1. 1945-1948 미 군정기와 제헌 의회: 이 때 기독교인과 선교사의 활동을 모두 이승만과 연결시킬 수 없다.

김구, 김규식, 여운형, 김재준, 최태용, 한경직, 한상동, 박형룡 등 해방 3년 기에 활동한 여러 기독교인들의 활동과 함께 그들의 건국론과 교회 재건론 등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 적산(신도와 천리교 재산) 불하 문제에서 기독교가 상당히 많은 특혜를 입은 것은 사실이나 (남궁혁, 언더우드의 역할), 일본 불교가 가졌던 막대한 사찰과 재산의 이전 문제 등과 함께 종합적으로 보아야 한다. 1950년 토지 개혁으로 기독교 기관 중 막대한 토지를 상실하게 된 경우도 있으며, 1950년 이후에도 적산 불하가 계속 되었는데, 이때는 시가의 90% 정도를 주어야 매입할 수 있었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승만은 친미주의자는 아니었다. 미국이 그를 대통령으로 나중에 밀지만 1순위는 아니었다. 

2. 1948~1950 내각: 이데올로그들은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1930년대 독일에서 유학한 문교부장관 안호상(1902-1999)과 국무총리 이범석이 내세운 일민주의는 독일식 민족주의와 전체주의 성격이 강한 권위주의적 파시즘이었으며, 정당 체제는 권력 교체가 거의 불가능한 일당 독재였다. 미국이나 영국은 권위와 카리스마를 가진 건국의 아버지를 내세워 대통령이 되도록 했고, 냉전 체제에서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반공주의 일당 독재를 지원했다. 이는 당시 독립한 3세계 여러 나라에 공통된 현상이었다. 종교적으로는 기독교보다 오히려 대종교의 입김이 강했고, 충효나 조선 시대 왕조 이미지를 강화해 신유교 이념이 강했다.

3. 한국 전쟁

그는 전쟁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전쟁이 터지자 재빨리 피난을 갔으며, 전세가 역전되자 3.8선을 넘어 북진 통일을 추구했다. 휴전에 동의하지 않고, 제네바협정에 따르지 않고 북한군 전쟁 포로를 일방적으로 석방하였다. (미군 포로와 교환에 응하지 않음). 한미방위조약과 휴전을 교환한 일은 남한의 안보 차원에서 필수적인 일이었다. 전후 미국의 막대한 지원을 얻어 낸 일도 공이었다. 그러나 전후의 한국이 그나마 살 만 하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남한인들이 북한 피난민을 동족으로 따뜻이 대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1952-60년에 매년 교회가 100-140백 개 설립되어 북한 기독교인들을 포용한 것이 피난민이 정착할 수 있는 중요 통로가 되었다. 

4. 이승만은 미국 언론과 상대할 때는 기독교를 적절히 활용했다따라서 미국 측 자료만 가지고 보면 기독교 정권이라는 이미지를 받게 된다. 조심할 일이다. 

5. 4.19 세대가 이승만 정권을 무너트린 후 기독교 지성들이 이승만 정권을 기독교 정권이라고 평가했는데, 이는 반성적 차원의 고백적 용어였지, 엄밀한 역사적 정치적 평가는 아니었다. 60-70년대에 나온 반성적 용어를 지금도 그대로 사용하면 곤란하다.

나는 이승만 정권을 기독교 정권으로 보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이 내각이나 국회 다수를 차지하고 대통령이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그 정권이 민주적이고 기독교 정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정권 고위직에 기독교인이 얼마나 많은가?) 수사법에 속으면 안 된다. 나무는 그 열매로 안다. 물론 우리는 시대적 한계와 다른 신생국과 비교하는 관점도 놓쳐서는 안 된다. 이승만의 공도 있었다. 


대통령 조찬기도회, 1960년 2월 18일에 모인 개신교 지도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