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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승만

1905년 8월 이승만을 일진회 대변자로 보도한 일부 미국 신문은 오보

1905년 8월 4일 극히 일부 미국 신문이 이승만과 윤병구를 일진회 대변자로 보도한 것은 오보였다. (아래 표 첫 칸에서 보듯이 Washington Times나  Morning Post가 오보를 내보내고 두 지방 신문도 그 보도를 받아 게재한 것으로 보인다. 오보의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한국 상황을 잘 몰라서, 혹은 일본 외교관들의 언론 공작에 의해, 하와이에서 온 윤병구나 위싱턴 디시에서 학생으로 대학 공부를 준비하던 이승만을 한국에 있는 일진회의  대변자로 본 듯하다.)

다만 뉴욕 롱아일랜드 현장에서 가까운 브루클린에서 발행된 Brooklyn Daily Eagle은 황제나 정부나 정파를 대변하지 않고 개인 자격으로 대통령에게 청원서를 제출하려고 했다고 바르게 보도했다. 

그 다음 날 8월 5일자 신문들은 여러 유력지(표에서 진하게 표시)를 포함해 10개 이상 여러 주의 신문들과 심지어 캐나다 몬트리올 신문까지도 일제히 그들이 황제나 정부나 어떤 정파를 대표하지 않고 개인 자격(이승만은 학생, 윤병구는 하와이감리교회의 목사)이라고 보도하고, 공식적 외교 라인을 통해 접견한 게 아니고 외교관도 아니므로 루즈벨트 대통령이 청원서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날 러시아 대표와 일본 대표를 만났다고 보도했다. 

1905년 8월 4일 윤병구와 이승만이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 한국 독립 청원서를 제출했을 때 미국의 여러 신문들(www.newspapers.com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신문 수십 종)은 그들의 자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다르게 보도했다. 급하게 정리했으므로 몇 개 빠졌을 수 있다. 주요 신문이 어떤 사안을 보도하면 지방지들은 이를 받아 요약하거나 그대로 보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8월 18일 청원서가 공개되자 신문들은 일제히 그들이 하와이 한인 대표 자격으로 청원서를 제출하려고 했다고 보도했다.

따라서 8월 4일자 몇 개 신문을 보고 이승만이 일진회 대변자로 루즈벨트를 만났으며, 따라서 친일파 행동을 했다고 주장한 <한겨레신문>과 이를 따라 동일한 주장을 한 여러 블로그나 신문들은 정정 보도/사과를 하기 바란다. 

각 신문 기사는 생략한다

이 밖에도 8월 4일 다음 두 신문도 일진회 언급이 없다.  

The San Francisco Call. [CA]: 두 사람은 미국이 한국의 독립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해 줄 것을 호소할 예정이다. 이와 윤은 한국 정부 대표가 아니다. 왜냐하면 한국 정부는 일본에 의해 통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Waterbury Evening Democrat. [CT]: 한국민(Korean people)을 대표하는 자들로 한국 독립 호소 예정

 

8월 5일은 더 많은 신문들이 개인 자격으로 적고 있다. The Salt Lake tribune. (Salt Lake City, Utah): 개인 자격; The Bemidji daily pioneer. (Bemidji, Minn.): 개인 자격; The Madison daily leader. (Madison, S.D.): 개인 자격 

4일자 오보가 나간 이유를 짐작해 보면 1)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한 미국 기자들의 무지, 2) 루즈벨트 대통령 주변 일본 외교관들의 언론 공작, 즉 이승만이 고종이나 민영환이 보낸 밀사라는 정보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의도적으로 그가 친일 단체인 일진회 대변인이라고 왜곡된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이 있다.    

(사족) 한 가지 재미 있는 기사는 New Mexico에 있는 Albuquerque Journal (Aug. 8, 1905) 보도이다. 이 기사는 두 사람이 개인 자격이라고 한 후, 하와이에 있는 한인들의 조직인 일진회의 대표자라고 적고 있다. 표기도 Kohinn Hoi로 하고 있다. 이처럼 당시 한국 상황을 잘 모르는 미국 신문 기자들이 미주 한인의 조직인 국민회나 한국의 일진회 등의 단어를 듣고 나름대로 정리했을 가능성이 크다. 일진회 표기 자체를 진회[in Chin Hoi]로 한 기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