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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 교수의 글 /역사에 대한 단상

소농경제와 근면혁명

Industrious Revoluton, not Industrial Revolution

이번 학기에 가르치는 "Intellectual History of Modern Korea"(한국근대사상사)에서 나는 첫 한 달 동안 초기 근대, 오리엔탈리즘, 중화주의, 정체성론과 동아주의 (참고 https://koreanchristianity.tistory.com/526?category=832177), 사회진화론, 1880-90년대 근대화 이론들, 식민지 근대성, 일제시대 신분제 변화 등을 강의했다. 첫 주에 서론격으로 "초기 근대"를 다루는데, 이 때 소농 경제와 근면 혁명, 선진유기적사회(the Advanced Organic Society) 이론을 소개한다. 

서구와 달리 동아시아는 17-18세기에 산업(Industrial) 혁명 대신 소농 경제에서 집약 노동을 중심으로 한 근면(Industrious) 혁명을 통해 'the Advanced Organic Society"를 만들었고, 조선도 17-18세기에 세계 주류 경제 수준에 맞게 발전해 영정조 시대의 선진 유교 사회를 성취했다. 서구의 산업혁명에 맞먹는 근면혁명이었다. 이것이 서구와 동아시아 초기 근대(Early Modern)의 차이였다. 이용하는 논문은 Jack Goldstone, “The Problem of the ‘Early Modern’ World,” Journal of the Economic and Social History of the Orient 41/3 (1998)을 바탕으로 한 John Duncan의 미발표 논문이다. 

그런데 왜 19세기에 동아시아와 조선은 쇠락, 정체했는가? 18세기까지 조선, 중국, 일본이 사용한 에너지 원은 人力(가족과 노비의 노동력), 畜力(소와 나귀 등의 힘), 火木(산에 자라는 나무로 요리하고 난방) 등이었다. 동아시아는 이들을 집약적으로 이용하여 소농을 중심으로 하는 선진 유기적 사회를 만들었으나, 18세기 말-19세기 초에 그 한계에 도달했다. 기후 변화에 따른 기근, 전염병의 창궐, 인구 증가에 따른 산지 개간과 남벌로 민둥산이 만들어지자(산림의 황폐화) 홍수가 나고 토지 유실 등이 발생했다. 곡가가 급상승하기 시작하고 농민 반란이 증가했다.

에너지 원이 한계에 달했으나, 서구와 달리 동아시아는 석탄을 사용하지 않았다. 한중일 삼국에서 수도권에서 석탄 매장지까지는 너무 거리가 멀었고 그 활용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런던만 해도 가까운 거리에 노지 탄광이 있어 발명된 증기 기관을 이용하여 기차와 기선을 만들었고, 식민지 원료로 상품 대량 생산에 성공, 식민지 확장에 나서 일찍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사회를 만들었다. (화란은 석탄 사용이 늦어 식민지 경쟁에서 밀렸다.) 19세기 한계에 도달한 동아시아가 근대화/자본주의화 되는 길은 외부의 도움에 의한 개혁이나 식민지라는 대안만 남았다. 조선은 불행히 후자의 길을 걸었다. 

이러한 "초기 근대론-소농경제론-선지유기사회론"은 연세대 김용섭 교수로 대표되는 "경영형 부농론- 자본주의 맹아론 - 내재적 발전론"을 비판한다. 한국사에서 전자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많지 않다. 후자의 민족주의 사학이 주류이기 때문이다. 북한 사학도 후자이다. 

전자를 지지하는 대표적인 학자로는 이영훈 교수와 미야지마 히로시가 있다. 나는 경제학사 전공이 아니므로 귀동냥 정도 수준이다. 여러 해 전에 이영훈 교수와 미야지마 교수의 특강을 들었고, 그들의 글을 대충 읽었다.  

그런데 작년에 사 두었다가 최근 읽고 있는 서양사학자 이영석 교수의 책을 펴니 40쪽 앞뒤로 근면 혁명을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 서양사학자로서 소농경제론과 근면혁명론을 지지하고 있다. 일본의 히야미 아키라, 스기하라 가오루, 미국의 Jan de Vris의 글을 읽을 필요가 있겠다. (얀 드 브리스는 산업혁명 하의 영국에서 노동자들에게 상품 소비재 소비를 위해 근면 혁명이 일어났다고 본다. 이영석 교수는 이를 비판한다.)

17-19세기 동아시아 사회는 자본 집약 대신 노동 시간 연장을 통한 노동 집약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했는데, 인구 증가로 토지가 부족하자 증가한 소농들이 근면, 농기구 개량, 농법 개량 등을 통해 생활 수준을 높였다. 근면 성실이 미덕이 되었다. 이 노동 가치를 존중하고 아끼고 열심히 일하는 태도가 1차적으로는 1900-1920년대 서북 지방 기독교회를 통해 보급, 실천되었고, 20세기 후반 한국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나와 이영석 선생님의 삶이 오버랩 되는 부분이 많아서 이 책은 나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하고, 몰랐던 많은 서양사와 한국사의 연결 고리를 찾게 한다. 은퇴 무렵 역사가가 쓴 글은 진지하고 재미있다. 한 시대와 한 세대를 정리하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하니 어찌 아니 읽을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