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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하나님론

1897 독립신문의 하나님

독립신문과 하나님 용어 문제

독립신문이 "하ᄂᆞ님 용어 토론"에 영향을 준 사건은 1897 10 12일 고종 황제 즉위식 때 일어났다. 이날 고종은 황제로 등극하면서 환구단에서 천제(天祭)드렸다. 독립신문은 이를 하ᄂᆞ님께 드린 제사로 표현했다. 

고려 시대에는 고려의 왕이 황제였기 때문에 천제를 드렸다. 그러나 조선 왕국에 오면 천제는 세조 이후 중단되고, 중국의 황제만 드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고종이 황제로 등극하였기 때문에 이를 하늘에 고했다. 청일전쟁으로 동아시아의 외교 질서의 축이던 중화주의가 무너지고, 이어서 대한제국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발생한 정치적 대사건을 상징하는 의례였다.

10월 12일 오전 2시에 거행된 황제 즉위식은 한 밤이라 서울의 모든 집들이 등을 밝히고 태극기를 달고 애국심을 표했다. 의정(議政)이 기도문을 낭독하고 고종을 황제로 칭할 때 고종은 천단(天壇)인 원형 환구단의 세 계단을 올라가 경건하게 천지신명께 절했다. 독립신문은 이를 하ᄂᆞ님ᄭᅴ 뎨샤ᄒᆞ시고 황뎨 위에 나아가심을 고ᄒᆞ시고라고 보도했다.

다음 날 고종은 조선의 국호를 바꾸어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선포하고 1897년을 광무(光武) 원년으로 삼았다.  독립신문은 조선이

라고 경축하고 하ᄂᆞ님께 감사했다. 더 이상 중국 황제의 책봉을 받는 제후 왕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책봉을 받은 황제가 된 것이다. 고종 황제 즉위식과 대한제국 선포에 대한 기사는 당시 서울 시민이나 전국의 관리와 지식인들이 모두 읽었을 것이다. 그런 기사에서 고종 황제가 하ᄂᆞ님께 제사했다는 것은 독립신문의 용어 용례만 보면 예수교의 하ᄂᆞ님께 제사를 드린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었다. 따라서 독립신문의 이 기사는 한국 교인들과 선교사들로 하여금 용어 문제에서 텬쥬 대신 하ᄂᆞ님을 선택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독립신문과 함께 그리스도신문의 사설도 국호의 변경은 조선이 독립국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기술했다. 실제로 1895108을미사변으로 민 왕비가 암살된 이후 내각의 왕당파들은 고종의 황제 추대 작업을 진행해 왔다. 그들은 황제가 없으면 독립도 없다.”는 입장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중국의 황제만이 북경에서 천제를 주관할 수 있었으므로, 고종이 독자적으로 하ᄂᆞ님께 제사를 올리는 천제는 중국으로부터 한국이 독립한 것을 상징했다. 이제 독립협회 회원을 비롯한 많은 인사들이 독립한 대한의 시조인 단군과 그가 섬긴 하ᄂᆞ님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고종이 황제가 되자 민 왕후도 명성황후로 승급되었는데, 인산 전날 일요일에 정동제일교회 새 예배당에서 추도회가 열렸을 때 서재필,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 세 명의 신문사 사장이 연설했다. 비록 윤치호 왕당파의 제국 프로젝트에 회의적이었지만, 고종 황제의 천제는 한국인들이 하ᄂᆞ님 용어를 선호하도록 하는 전환점이 되었고, 자주독립 국가를 위한 기독교 민족주의와 연결되었다.

독립신문의 하ᄂᆞ님은 천제(天帝)의 개념이 강했다. 곧 하늘님의 하느님의 의미였다. 그것이 어떻게 유일신 하나님의 의미로 변해 가는지는 내 책 <한국기독교형성사> 1장을 참고하기 바란다.

하나님 용어 문제는 한글, 한국 종교문화, 한국 정치 등과 맞물리면서 발전하였다. 신학은 책상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