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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하나님론

[신조어] 하나님, 1905~07년

1905-07년 일반인들이 사용한 '하나님

1. 19051119일자 <대한매일신보>을사조약 후 국가가 침륜 멸망하는 지경일 때 10만 예수교인은 매일 위국기도회를 열고 위국기도문으로 하나님께 나라를 구해 달라고 기도했다.

을사조약 후 위국기도회 기도문, 대한매일신보, 1905년 11월 19일

2. 1906420일자 <帝國新聞>의 사설, "예수교회에 대하여 충고함"

사설, " 예수교회에 대하여 충고함 ," <帝國新聞>, 1906년 4월&nbsp; 20일.

예수교인 청년들이 힘을 믿고 악행하고 돈을 착취하는 교폐에 대한 비판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님을 존봉하고 십계를 지키어 충애를 주장하는" 예수교회가 그런 누명에서 벗어날 것을 권하고 있다.

그때부터 예수를 팔아 조직()를 만들고 돈을 뽑아내는 ㅈ광훈 같은 자들이 있었다. 작폐하는 불한당들이었다. 기사의 청년회 집단은 안되자 일진회에 가입했다. ''에서 일진''로 갔다.

3. 1907皇城新聞 연재소설 <夢潮>의 한 구절이다.

"몽조 (17)," <황성신문>, 1907년 9월 6일.

유학 후 개화파로 노력하던 남편이 옥사한 후 실의에 빠진 주인공에게 전도부인(전도마누라)이 찾아와서 전도하는 첫 마디이다. 다음 회를 보면 <누가복음> 쪽복음을 주고 간 것을 알 수 있다.

<황성신문>에서 '하나님'을 썼다면 당시 그 용어가 보편화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1897년 고종 황제가 등극할 때 천제단에서 '하나님'께 제사했다고 보도한 <독립신문> 이후, <대한매일신보><제국신문>'하나님'을 사용했고, 이어 한자어 투성이이던 황성신문에서 한글을 대거 채용하면서 또한 '하나님'을 사용했다.

이 일반명사 '하나님'1897-1905년 국가 쇠망과 민족 운동의 위기 상황의 용광로에서 주조된 기독교 용어이면서 동시에 일반인이 수용한 신조어였다. 단순히 아래 아를 줄이는 철자법 개량의 결과만이 아니었다. 하느님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용한 역사를 존중해야 한다. 하나님은 함부로 버릴 용어가 아니다. 용어에는 역사가 들어있고, 그 신앙고백의 역사가 귀하고 고통스러울수록 간직할 필요가 있다. 개신교의 '하나님'1900년 전후의 신조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