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1904년 용어문제 논쟁 과정에서 문서를 남긴 이들은 대개 선교사이므로, 그들의 견해는 자세히 소개되어 있고 논의가 정리되어 있다. 선교사들이 성서위원회 번역자회 회원으로서 용어를 결정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1차적으로 그들의 견해와 이해가 중요했다. 그러나 과연 한국인들은 침묵하고 수동적으로 선교사들의 결정을 수용했을까?
다음 책에서 나는 한국인들이 논쟁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여 원시 유일신에 바탕한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기독교의 하나님으로 신학화하는 작업에 참여했음을 논했다. 한국인 교인들과 지도자들이 원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갔다.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조사들이나 주시경과 같은 신흥 한글학자들로부터 하나님 개념을 배웠다. 선교사들의 결정만 기다리고 앉아 있을 한국인들이 아니었다.
앞부분은 1897년 2월에 나온 <죠션크리스도인회보> (곧 <대한크리스도인회보>로 이름을 변경)와 이어서 나온 <그리스도신문> 사설에 나타난 한국인들의 하나님 이해이다. 이어지는 <독닙신문>의 하나님론에 대해서는 내 책 <한국기독교형성사> 다음 부분을 보라.
새 용어 하나님을 만드는 신학적 창조성은 청일전쟁-러일전쟁 기간 국망의 풀무불 속에서 나왔다. 하나님과 고난 받는 백성들이 함께 이루어낸 작업이었다. 고난의 백성이 용광로 속에서 화학 작용으로 만든 결정이 유일신 하나님이었다.
용어 논쟁에 대한 역사를 잊어버렸기에, 아직도 하나+님 운운하는 자들이 많고, 쉽게 하느님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많다. 용어에는 개념사가 있고, 용어에는 역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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