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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여성, 어린이

한국의 첫 여자 목사 채핀 Chaffin 자매

Chaffin, Anna Margaret Bair, 蔡富仁, 1883~1977: 

1911년 결혼하고 남편 채핀 목사를 따라 1913년 미감리회 선교사로 내한했다. 1916년 6월 남편과 사별하고 미북감리회 소속 선교사가 되어 서울 감리회 여자성경학원 교사가 되었다. 1918년 앨버트슨(Albertson)의 별세로 그 후임 원장이 되었다.

안식년을 떠나기 위해 여권을 신청했을 때 채핀 부인과 딸, 1918

안식년(제1차)때 뉴욕 성서학원에서 신학을 공부(1919-1920)했다. 1920년 한국에 돌아와 학교명을 감리회 협성여자신학교로 바꾸고 초대 교장으로 취임했다. 안식년(제2차) 에는 콜럼비아대학에서 종교교육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받았다. 1931년 《우리 집》선교잡지 편집인과, 《절제 The Tempreance News》발행인으로 문서 선교에 힘썼다. 

1931년 6월 14일 양주삼 총리사 집례로 개성에서 한국 최초 여성 목사로 안수받았다. 협성여자신학교와 협성신학교가 통합되면서 부교장으로 여성 교역자 양성에 힘썼다. 

1937년 만주신학교를 설립, 초대 교장으로 봉직하다가, 1938년 경기, 충청지역 여성선교회와 사회복지 사업을 관장했다. 친동생 로사 베어 목사가 이곳에서 선교 활동 중 뇌암으로 별세했기 때문이었다. 1940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출국당했다.

1946년 성탄절 무렵 다시 서울로 돌아와 여선교회 사업을 재개했다. 이화여대와 감리회신학교에서 가르쳤다. 

그는 “한국선교 35주년기념 및 회갑연” 과정에서 “내 평생 사업이 여성 교역자 양성에 있으므로, 일생을 바쳐 일한 은퇴 여전도사 안식관 설립”이 소원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1948년 10월 5일 “채부인 기념 여전도인 안식관이 개관되었다. 

그는 은퇴(1952년 8월) 한 뒤에도 감리회 해외구제위원회 사업국장으로 봉직하고, 이화 유지재단(有夏學園) 이사장을 역임(1954-1958)했다. 일평생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오직 선교와 여성교역자 양성에 헌신하고 1962년 미국으로 돌아가 1977년 94세에 별세했다. 유해는 양화진 남편 곁에 안장되었다.

양화진 채핀 부부의 묘

그녀의 동생 로사 베어(Blanche Rosa Bair 裵義禮, 1888-1938)

1888년 미국 디모인에서 출생했다. 콜럼비아 대학을 졸업했다1913년 감리회 선교사로 언니 안나를 따라 내한했다해주, 공주, 인천지역에서 전도 및 여성 사회사업에 종사했다YMCA 영어학교 교사로 봉직(1929)했다1930년 태화 여자관 관장으로 여성 사회사업을 했다그의 언니 안나 채핀과 같은 날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천안지방에서 여성사회사업을 위하여 활동(1934-1938)했다1938310일 세브란스 병원에서 병으로 별세하여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한국 교회는 아직 이들의 깨끗한 사진 한 장 제대로 가진 게 없다. 부끄러운 역사 정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