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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1890s

원문을 인용할 때는 정확히 해야

초기 한국 개신교의 반봉건적 개혁성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인용문은 1899년 3월 1일자 <대한크리스도인회보>에 실린 다음 "내보" 소식이다. 자주 인용되었기 때문에 유명한 글이다. 먼저 원문을 보자.

그런데 한국기독교사연구회, <한국기독교의 역사 I> (기독교문사, 1989 초판), p. 261은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붉은 칸 부분을 원문에서 확인하면

"유세력한 양반"-->"엇던 유세력한 량반"으로; "그 까닭인듯" -->  " ᄭᆞ닭인듯"; "하느님을" --> "ᄂᆞ을"으로 바르게 고쳐야 한다.

더욱이 이 책의 인용문은 현대 철자법으로 고친 것도 아니고, 원문을 그대로 옮긴 것도 아니고, 필자가 자의적인 철자법으로 옮겨 놓았다.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면 다음과 같이 현대어로 옮겨도 좋을 것이다.

이번에 새로 난 북도 군수 중에 어떤 유세력한 양반 한 분이 말하되, "예수교 있는 고을에 갈 수 없으니 영남 고을로 옮겨 달라." 하니 어찌하여 예수교 있는 고을에 갈 수 없느뇨. 우리 교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도라. 교를 참 믿는 사람은 어찌 추호나 그른 일을 행하며 관장의 영을 거역하리오. 그러나 관장이 만약 무단이 백성의 재물을 빼앗을 지경이면 그것은 용이하게 빼앗기지 아니할 터이니, 그 양반의 갈 수 없다는 말이 이 까닭인 듯.    

이 글에서 관장은 군수를 높혀서 부른 말이다.

참고로 이 인용문을 처음 1973년 논문에 사용한 이만열 교수는 원문을 현대어로 바꾸어 바로 인용하였다. "韓末 기독교인의 민족의식 형성과정," <韓國史論>, 1권 (1973년 5월): 365. 이 논문은 사실 이만열 교수의첫 한국교회사 논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