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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지도, 그림, 사진

김은호의 "부활 후"

부활하신 그리스도, 1962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1892-1979) 작, 1962년. 비단에 채색 79×52㎝. 서울 YMCA 소장                

[1938년 작품이 소실되자 재제작한 것이다.]

이덕주 교수 설명

이당이 붙인 그림 제목은 ‘부활후’(復活後)이지만 나는 이 그림을 ‘황색 그리스도’(Yellow Christ) 혹은 ‘붓다 그리스도’(Buddha Christ)라고 부른다. 이유는 전체적으로 그림 색깔이 아시아 색깔인 황토색(혹은 금색)으로 이루어졌고,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전통 불상(佛像)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당이 이 그림을 그리게 된 과정을 설명하면, 이당은 세필화의 대가로서 순종 황제의 어전을 그렸던 궁중 화가였다. 어려서부터 서울 안국동 교회에 출석하였고 서화 미술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삼일운동 때 독립신문을 돌리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출옥한지 얼마 안 된 1924년 총독부에서 주최한 조선미술박람회에 ‘부활후’라는 작품을 출품하여 3등을 받았는데, 그 때 그린 그림은 부활 직후 그리스도와 함께 좌우에 베드로와 야고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를 그린 3폭 병풍 형태였다. 삼일운동 직후 우리민족의 ‘부활소망’을 그린 것으로 여겨진다. 이 그림은 1938년 미국 플레밍출판사에서 출판한「Each with His Own Brush」라는 ‘제 3세계’ 미술 작품집에 수록되어 한국을 대표하는 토착성화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당은 이 그림을 기독교청년회에 기증하여 현관에 걸려 있었는데 1950년 한국전쟁 때 건물과 함께 소실되었다.

1960년 들어서 기독교청년회관을 다시 세우려는 운동이 전개되었고, 그 실무를 맡아 보았던 전택부(全澤鳧) 총무는 건축 기금 모금운동의 방편으로 유명 화가들을 찾아가 그림을 부탁하였는데, 이 때 이당에게도 그림을 부탁했다. 이당은「Each with His Own Brush」에 실린 그림 사진을 바탕으로 30년 전에 그렸던 그림을 다시 그렸다. 그러나 이번엔 양쪽의 제자들은 빼고 그리스도만 그렸다. 결국 삼일운동 직후 민족의 독립을 그리며 그린 그림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민족 상황에서 재건을 위해 몸부림치는 민족의 의지를 나타낸 그림으로 ‘부활’되었다. 

그림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을 살펴보면, 이당 특유의 ‘세필(細筆)’로 묘사 된 머리칼과 수염, 그리고 세마포 주름 등에서 중국 북화(北畵) 전통에 충실한 인물화 양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수염을 제외한다면 그리스도의 얼굴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하기 어렵고 시선을 어느 한 곳에 고정하지 않도록 처리한 것에서 종교화의 신비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좀더 자세히 뜯어보면 그리스도의 표정이나 자세에서 불교의 아미타불(阿彌陀佛) 입상(立像)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머리 뒤의 배광(背光)과 왼쪽 어깨를 드러낸 견의(肩衣),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옷 주름과 맨발 등이 그렇다. 백제 미소의 압권이라는 서산 마애석불(磨崖石佛)의 모습과 흡사하다. 특히 그리스도의 손 모습이 불상 이미지다. 불상에서는 손의 모양(手印)에 따라 그 선포하는 메시지가 다른데, 펴서 올린 오른손은 ‘시무외인(是無畏印)’이라 하여, “중생들아 두려워 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역시 펴서 아래로 내린 왼손은 ‘여원인(如願印)’이라 하여 “네 소원대로 이루어지리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중에 ‘시무외인’은 그리스도께서 부활 후 여인들에게 나타나, “내니 두려워 말라”(마28:10) 하신 말씀, ‘여원인’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면 무엇을 구하든지 그대로 이루어지리라”(요15:7)고 하신 말씀을 연상케 한다. 다만 불상에서는 오른손 손끝이 어깨 위로 올라가지 않는 것에 반해, 이당은 어깨위로 올렸으며, 왼손 역시 불상에서는 손끝이 아래를 향하나 이당은 위를 향하게 하였다. 그리고 손바닥의 ‘못 자국’으로 부활 후의 그리스도를 묘사하면서 ‘맨 발’을 통해 그의 선 자리가 거룩한 곳(출3:5)임을 암시하였다. 

이당이 의도적으로 불상을 원용해 그리스도상을 그린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다만, 한국 전통 불화의 필법에 익숙해 있던 그로서 그리스도를 그릴 때 몸에 익숙한 방식으로 그리다 보니 불상 흔적이 나타난 것으로 보이며, 불상 양식을 그대로 모방하기 보다는 그것을 기독교적으로 재해석함으로 변화된 양식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그림을 한국 기독교 ‘토착 성화’의 걸작이라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는 이처럼 우리 문화와 전통에 익숙한 방식으로 재현되어야 한다. 

* 나의 교정 

영어 책은 플레밍 출판사가 아닌 플레밍(Daniel J. Fleming)이 편찬, Friendship Press 출판이다.

https://archive.org/stream/eachwith00flem#page/n5/mode/2up

Each with his own brush; contemporary Christian art in Asia and Africa

archive.org

Each with His Own Brush (1938)에 실린 김은호의 "그리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