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에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는 주제이지만,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어 다시 정리해 본다.
---최근(2017년) 페이스북에 추수감사주일에 대한 글이 몇 개 올라온다. <데일리 투게더>에도 권영진 목사의 칼럼이 실렸다. 그 내용을 대충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한국교회 추수감사주일(11월 셋째 주)과 구약의 초막절(유대음력 7월 15일)은 다른 날이다. 따라서 현재 한국교회가 지키고 있는 추수감사절은 성경에 존재하지 않는 절기이다.
2. 유대인의 3대 절기의 하나인 초막절(수장절, 추수 감사)은 한국 음력으로 하면 8월 추석이 되므로, 추석을 한국교회 감사주일로 하면 좋을 것이다.
3. 현재 한국교회가 지키고 있는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11월 넷째 주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킨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셋째 주일인가? 개화기 때 한국에 기독교를 전한 미국의 선교사가 들어온 것을 기념한 날짜가 11월 셋째 주일이라 한국 교회는 1904년부터, 장로교회는 1914년부터 이 날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다. 따라서 미국을 따라 하거나 선교사를 기념하는 추수감사절 대신 다른 날짜로 변경하는 것이 좋다.
세 항에 대한 나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1. 정확하게 말하면 그렇다. 그러나 초막절은 추수 감사와 종말론적 기대가 만나는 절기였다. 추수감사 절기는 지역마다 달력이 다르므로 날짜는 다르다.
2. 추석을 추수감사절로 하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Yes and No.
Yes. 1) 추석의 기독교화 논의는 지난 100년 넘게 여러 사람이 주장해 왔으며, 토착화 입장에서 선교신학과 예배신학이 충분히 논의할 사항이다. 2) 초막절(Feast of Tabernacles or Feast of the Ingathering)은 추수와 연결되어 감사절이기도 하지만, 초막에 거하면서 조상의 광야 생활을 기억하는 절기이므로 조상 추모와 연결할 수 있다. 3) 유대인은 죽음과 인생의 허무함과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절기로 전도서를 읽는데, 추석도 제사와 연결하여 죽음과 인생의 덧없음과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기독교 절기로 만들 수 있다.
No. 그런데 왜 정착이 안 되었을까? 짐작해 보면 1) 추석 때 추수감사절을 지키면 추수감사절 절기가 추석 분위기에 파묻혀 기독교 본연의 감사절을 지키기 어렵다. 2) 전통 절기인 추석과 대항하는 기독교의 모습을 보여서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높다. 3) 초막절이 강조하는 다른 요소인 종말론적 소망이나 시대변혁적 상상력이 한국 고유의 추석(주로 조상 숭배와 가족 간의 유대와 정체성 강화를 위한 절기)과 얼마나 잘 만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3. No.
그렇게 단순하게 볼 사항이 아니다. 한국인이 원해서 주체적으로 정한 날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이렇게 정리한다.
한국개신교 추수감사주일의 유래: 여기에는 약간의 미스터리가 있다. 선교사들은 1885년부터 미국식으로 추수감사절을 지켰고, 그것이 한국 교회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으므로, 1904년 이전에도 추수감사절은 있었다. 그러나 장로회의 경우 공식적 결정은 1904-07년에 이루어졌다.
1907년 9월 조선예수교장로회 노회가 조직되기 전에 치리 기관은 장로회 공의회였다. 1901-06년 영어를 쓰는 회와 조선어를 쓰는 회가 함께 합성 장로회공의회를 구성했다. 매년 9월에 열린 공의회 연례회의에서 회원들은 교회에 필요한 여러 주제에 대해서 연설했다. 혼인 연령, 장례 절차, 사경회 운영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각자의 견해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1904년 9월 13일 서울 구리개 제중원에서 회집된 제4회 합성 장로회공의회에서 서경조 장로가 우리나라 교회가 이전에 비해 왕성한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이므로 감사일을 정하고 일 년에 한 번씩 열락하며 감사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연설했다. 양전백, 김흥경, 방기창, 한석진이 계속 설명했다. 무어 목사는 금년(1904년)부터 바로 시행하자고 했으나, 헌트 목사가 5인 위원회로 1년간 다른 선교회와 의논한 후 동일한 날로 정하자고 건의하여 이를 채택했다. 5인 위원은 헌트, 언더우드, 방기창, 심취명, 양전백이 선임되었고,
이들은 의논한 후 위원장 헌트 목사가 보고했다. 일단 “금년 감사일은 양력 11월 11일로 정하였다 하니 정익노 장로가 동의하여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朝鮮耶穌敎長老會公議會 제4회 회의록,” 곽안련, 『長老敎會史 典彙集』(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1919), 233, 237쪽].
11월 11일 금요일로 정한 근거는 알 수 없다. 당시 미국에서는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한국의 경우 추수 절기는 10월 말이나 11월 초가 적당했고, 서울 이북에 기독교인이 많았으므로, 10월 말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흥왕”한 것을 감사하는 특정한 날이 무엇일까? 그것이 어려웠다. 아마도 그래서 1년 동안 타 선교회들이 동의하는 한 날을 잡지 못했다.
1906년 공의회 제6차 회의에서 위원회(베어드 목사) 보고에서 올해는 11월 마지막 목요일로 정하였다고 하자, 한석진이 동의하고 이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교회처럼 11월 마지막 목요일로 감사절로 하는 결정은 1908년 노회에서도 다시 채택되었다. 한국교회가 흥황하게 된 날로 하자던 취지는 사라지고, 미국 남북전쟁 때인 1863년 링컨 대통령이 선포한 이후 정해서 지켜오던 11월 넷째 주 목요일을 받아들인 것은 미국 선교사들이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아쉬운 결정이었다.
그러다가 1914년 총회에서 선교사가 처음 한국에 온 11월 제3주일 후 수요일에 감사주일을 지키기로 변경했다. [『예수교쟝로회 죠션 총회 뎨삼회 회록』 (예수교장로회총회, 1914), 29쪽.] 클라크(C. A. Clark 곽안련)도 이를 확인했다. “感謝日은 陽曆 十一月 第三 主日後 三日(水曜日)노 定하얏난대 此난 宣敎師가 朝鮮에 始渡하던 日을 擬用하기로 ᄒᆞᆫ 것이니라.” [곽안련, 『長老敎會史 典彙集』(1919), 63.]
그런데 선교사가 한국에 처음 온 날이 왜 11월 제3주일 후 수요일일까? 널리 알려진 대로 첫 주재 선교사인 북장로회의 알렌 의사는 9월 22일 서울에 도착했다. 그는 9월 23일 미국공사관 의사로 임명을 받은 후, 상하이에 있는 가족을 데리고 다시 10월 26일 서울에 와서 정착했다. [그 전에 매클레이는 1884년 6~7월에 서울을 방문했다.] 1885년에는 4월 5일에 첫 목회선교사인 언더우드 목사가 서울에 왔다. 이후 7월까지 스크랜턴 가족, 헤론 가족, 아펜젤러 가족이 차례로 도착했다. 그러면 11월 세 번째 주일 후 삼일은 어떤 날이며, 누가 온 날인지 알 수 없는 신비한 날이다. 우리가 모르는 어떤 선교사가 11월 셋째 주 수요일에 한국에 첫 선교사로 왔을까?
참고로 귀츨라프는 1832년 7월 25일 충청도 홍주만의 고대도에 도착했다.
토마스는 1865년 9월에 백령도에 도착했고, 이듬해 1866년 9월 2일 평양에서 사망했다.
코베르트는 1867년 1월 23일 와슈세트호를 타고 백령도에 도착했다.
마티어는 1868년 4월 10일 쉐난도흐호를 타고 백령도에 도착했다.
로스는 1874년 10월 중순에 고려문을 처음 방문했고, 1876년 4월 말에 2차 방문했다.
미국에서 지키는 11월 넷째 주 목요일 + 첫 선교사 알렌 의사 내한 정착 기념일 [10월 26일]을 절충해서 1914년 11월 셋째 주 수요일로 정했다고 본다. 이것이 지금은 셋째 주 주일로 바뀌어 지켜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개신교의 추수감사절은 미국 Thanksgiving Day를 수용한 것이지만, 일방적으로 따라간 것도 아니고, 한국개신교 시작과 흥왕함을 기념하면서 한국 추수 시점과 맞춘 절기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글이 남장로회 잡지인 Presbyterian Survey (1928년 2월): 90쪽에 목포의 추수감사절을 소개하는 엘리자베스 니스베트의 기사에 나온다.
즉 글 첫 머리에 11월 16일 추수감사주일로 지켰는데, 미국에서 보면 날짜를 잘못 지킨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것은 미국식 Thanksgiving이 아니라, "The Korean Church has instituted its own day of Thanksgiving, a day commemorating the coming of the first missionaries to this land"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글에서는 한 명 알렌이 아니라 선교사들이라고 하여, 초기 개척 선교사들이 한국에 도착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적었다. 목포교회 강단 뒤에는 한자로 "秋收感謝節"이라고 큰 포스터를 붙였다. 곧 미국의 Thanksgiving을 조선화했던 것이다. 이 날 헌금은 해외 선교를 위해서 사용했다. 선교를 받은 것을 감사하여 이제 자립한 한국교회가 선교하는 교회로 독립한 모습을 위의 기사에서 읽을 수 있다.
한편, 정동제일교회 최병헌 목사는 신라 시대 가배절 풍습이 조선 시대 추석 풍습과 다르듯이, 절기와 예배는 시대 가변성이 있으므로, 얼마든지 과거 절기를 지키지 않을 수도 있고, 새 절기를 창출해 지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유추하면 추석이 시대적으로 변했듯이 지금은 추석을 지내지 않아도 되고, 추석 대신 기독교의 추수감사절을 지켜도 된다.]
구약의 절기도 지금은 지키지 않는 것이 많다. 3대 절기 중 유월절과 오순절은 기독교로 넘어 왔으나, 초막절은 넘어 오지 않았다고 보는 게 일반적 학설이다. 추수 관련 절기는 장소에 따라 달력과 절기가 다르므로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많고, 지역마다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반구의 추수감사절을 생각해 보라.] 추수기가 다른 이스라엘 구약 농경시대의 추수감사절 날짜를 그대로 가져올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신학적 의미는 다른 절기로 기독교화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한국 교회의 추수감사절 절기가 성경에 없다고 해서 못 지킬 이유도 없다. 크리스마스도 구약이나 신약에 없는 절기이다. 절기나 전례는 시대에 맞게 변하는 것이다. 미국의 추수감사절 절기 날짜를 그대로 따라가지 않은 것은 물론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초기 한국교회가 복음을 전해 준 선교사를 기념하여 한 날을 감사의 날로 정한 것은 당연했다. 교회가 흥황하자 감사의 마음으로 그 날을 제안한 서경조 장로에게 친미적 태도는 없었다. 사실 그는 선교사 밑에서 일하지 않고 소래에 거주한 대단히 자주적인 인물이었다. 선교사에 대해 깐깐한 태도를 지녔던 한석진 목사도 11월 추수감사절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것을 왜 지금 와서 친미적 사대적 절기로 매도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민족주의적 관점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늘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전과 절기는 시대적 상황과 문화와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적당한 형식으로 바꿀 수 있다. 추석을 추수감사절로 바꾸는 논의는 계속하되, 굳이 100년 이상 지켜온 추수감사주일을 비하하거나 폐기할 필요는 없다. 추석을 추수감사절로 하려면 더 많은 신학적 토론과 작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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