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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여성, 어린이

1955 재건교회 첫 여자 목사 최덕지

1955년 재건교회 첫 여자 목사로 안수 받은 최덕지

 

최덕지 목사

 

 

족운동, 여성운동, 신사참배 반대운동, 교회재건운동의 기수이자 첫 한국인 여자 목사의 한 명인 최덕지 여사를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뒷줄 중앙이 최덕지, 1936년 경남노회 순회 전도사 시절

[출처: http://www.hanryeo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11578]

 

 

1920년대에는 통영의 유곽을 보고 공창 폐지 운동을 전개하여 여성 권익을 신장하고

1930년대 후반부터 해방까지 여전도회 회장으로 신사참배반대 운동을 전개하고 

감옥에서 온갖 고문과 핍박을 견디며 7년 성상을 투쟁하다가 옥중성도로 해방을 맞이하고

해방 이후에는 가장 강경한 교회 재건운동, 신사참배 회개 운동을 전개한 한국교회의 지도자

교회 재건을 위해 우상숭배로 창녀가 된 기존 교회를 부정하고

교회 밖에서 새로운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에클레시아'를 불러내려고 했던 시대의 예언자

 

1954년 3월 9일 제3회 남한 지방회 총회에서 재건 교회 헌법을 제정했다.

 

1954년 7월 15일 강상은 목사가 "여 성직에 대한 성경적 천명"을 발표하여 여자 목사 안수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주상수 목사 등 6명의 교역자와 9 교회는 여자 목사 안수에 반대하고 교회를 분리해서 나갔다. 최덕지는 명예 목사로 호칭되었다.

 

1955년 5월 4일 남한 지방회 4차 총회에서 최덕지, 김영숙, 소갑숙이 목사로 안수받았다. 안수자는 강상은 목사였다.  이로써 최덕지는 재건교회에서 안수 받은 첫 여자 목사가 되었고, 재건교회의 중심적인 지도자가 되었다. [수정: 1955년 3월 감리회의 전밀라 목사 안수 직후이므로, 한국 교회 최초의 여자 목사는 전밀라였다.] 

 

아무튼 이는 현재 한국 개신교에서 일부 여자 목사를 안수하고 있지만, 대부분 부목사로서 남자 목사나 부목사의 보조 역할에 머물러 있는 것과 대조된다. 당회에 참석하고, 교회 의사 결정에 투표권을 가지고 온전한 지도력을 발휘하게 할 때 한국 교회는 살아날 수 있다. 교회 안에서의 양성 평등은 요원하다. 여자 목사가 담임목사가 되고, 여자 장로와 여자 목사가 당회원이 되는 것이 우선 과제다.  

 

역사적 평가도 사가들이 더 중지를 모아야 겠다. 한상동 목사를 중심으로 한 고신은 교회 안에서 회개운동을 전개했고, 최덕지 목사의 재건교회는 교회 밖에서 교회를 새로 만들려고 한 '분리주의자'로 비판받아 왔다. 그러나 결국 고려파도 재건파도 기성교회로부터 외면 당하고, 새로운 교단을 만들어야 했다.      

 

자세한 정보는 다음 기사들을 참고하세요.  @2016. 6. 14 옥성득

 

참고 기사: 

http://msjaegun.or.kr/main/sub.html?Mode=view&boardID=www36&num=962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21053

 

http://data.cnews.or.kr/1556/contents/senggak/senggak1556-3.htm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9ePL&articleno=16848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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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2019년 1월

 

참고

http://cluster1.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Dqi&fldid=83t&datanum=6&openArticle=true&docid=Dqi%7C83t%7C6%7C20030308192353&q=%B1%E8%BE%E7%BC%F8%20%BD%C5%BB%E7%C2%FC%B9%E8&srchid=CCBDqi%7C83t%7C6%7C20030308192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