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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찬송, 찬송가

애국가 작사자는 윤치호, 수정자는 안창호

이영수, "애국가와 곡조에 관하여," <국민보> (샌프란시스코, 1958년 4월 9일)

http://search.i815.or.kr/OrgData/OrgList.jsp?tid=ns&id=GM1958040901-07

 

 

금년도 국민회 창립 기념식에서 본회 역사담을 중가주(중부캘리포니아) 지방회에서 해온 바 할 수 있는 데까지 간단을 주장하느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주장을 하여 놓고 보니 마땅히 할 말들을 못하였음이 적지 않게 유감이 됩니다.

더욱이 청산에 앞길이 날로날로 가까워 오는 우리 소수로 넌덜이 세상을 떠나게 된 후에는 후세 한족들이 앞길이 없게 되리라는 생각에서 우리 애국가와 곡조에 관한 내력만을 간단히 말하고자 합니다.

재미 이영수

작자

광무황제 당시에 윤치호가 현행 애국가를 제작하실 때 스코틀랜드국의 국가 곡조에 무궁화 三천리를 제작하셨음을 우리가 잘 알아 왔습니다.

교정

국민회 당시 북미 총회와 관련된 대의원회 공결로 제一차 우레들랜 지방에서 최정익 제의로, 제二차로 샌질리스비 지방에서 안창호 제의로 이상 양차에 걸쳐서 약간 교정이 되었는데 교정이 된 그 말에 예를 들어 말하면 우리 황실이요와 기타에 말이었습니다.

불허

一九十五年 전후 간에 세계적으로 교육자 대화가 하와이 호항(호놀룰루)에 회집이 될 때 우리 한인도 참가하게 되었고 그 회 진행 순서 중에 두 가지 특색이 있었는데 一. 각 민족들이 자국에 국기를 들고 입내할사 과함에 우리로서는 태극기를 들고 들어갈 제 한족에게 국기가 없다 하여 못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이승만 박사가 자의로 국기를 만들어서 입내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국기를 어떤 개인이 단독적으로 못할 바를 이승만 박사가 하였다고 평론이 원근간에 다소간 있었습니다.

二. 각 민족들이 입내 후에 자국에 국가를 부르는 순서이었는데 우리로서는 무궁화 三천리를 부를 제에 역시 거절을 당하였습니다. 거절을 당하게 된 그 원인은 곡조가 남의 나라 국가에 곡조라 함이었습니다.

탄식

이 꼴을 당하게 된 그 당시에 한족으로서 누구나 발하는 탄식을 금하지 못할 바가 되었습니다.

제의

그 후 북미 총회장 최진하 각하에게 내 개인상으로 제의하기를 우리 중에 작곡할 수 있는 분들이 없지 않을듯하니 관청하여 작곡이 된 그 곡조들을 우리 임시정부에 품청하여 승낙을 득하여서 공통하게 부르게 함이 좋겠소 하였습니다.

작곡

대한인국민회 북미 총회 당국이 우리의 음악대가인 안익태 선생에게 청구하였던바 다행히 선생이 작곡을 하여 주셔서 오늘날 우리가 유쾌하게 고창하여 오는 중입니다.

청구함

끝으로 우리 음악가 제위에게 광의적으로 청구하고자 함은 동서양 어떤 나라이던지 자국의 고유물이 있음을 누구나 잘 아는 바올시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음악에 대하여 천대를 하여왔음이 적지 않은 불행이 되어서 四천여 년 역사국에 문화가 있다 하는 그 나라 민족으로서 자국에 음악에 대하여 전혀 부지라 함이 이것 얼마나 딱한 바가 아니겠습니까?

그러함으로 광청하는 바는 우리 국가 중에 과연 멋들고 흥치나는 곡조들이 많사온데 그것들을 四음으로는 호아 그려 내어 주셔서 四음으로 그리는 방도 중에 유성기판에 구성을 따르는 것이 좋을 듯 성년이 된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려니와 우리 아동들에게 교수하기에 편리가 되어서 장차 한국의 고유가가 편만하게 되기 위하여 청구함이 올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