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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찬송, 찬송가

애국가는 애국가

애국가는 애국가

2015. 8. 15 옥성득

"동해물과 백두산이 말으고 달토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대한 만세~" 

애국가 가사는 1897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1907년 이전에 완성되었다. 작사자로는 윤치호, 안창호, 최병헌 설 등이 있으나 확실한 작사자는 없다. 분명한 것은 개화기 애국지사들이 함께 만들었고 국운이 기울 때 대한제국을 살리자, 근대독립 국가를 건설하자며 애국지사와 학생과 교회와 민중이 함께 불렀던 대한의 노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을 위해서 싸웠던 뭇 대한국인들이 국내외에서 피땀 흘리며 불렀던 애국가였다. 샌프란시스코의 국민회도, 상하이의 임시정부도 이 노래를 불렀다. 

그 가사가 온전한 형태로 처음 출판된 것은 윤치호 편역의 '찬미가'(1907)였다. 올드랭싸인 곡에 맞추어 불렀다. 윤치호는 그 작사자를 밝히지 않았다. 당대의 공공재였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1948년 정부수립 때 안익태 곡(1935)으로 일부 가사를 고쳐 부르면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최근 일부에서 애국가를 윤치호의 작사로 거의 명시하면서 그의 친일 행적을 들어 애국가로서 부적절하다고 논한다. 단견이다. 개화기 14년과 일제 36년, 50년 애국선열의 역사를 무시하는 역사말살 행위이다. 새 애국가를 만들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일본이다. 그 애국가를 부르면서 독립 운동한 역사가 사라지기 때문이요, 대한민국은 애국가 하나 제대로 없이 70년을 유지한 무정통성의 나라가 되기 때문이다. 

그 곡의 작사가가 누구이건 작곡가의 친일이 어떠하든, 이 노래에는 1890년대 이후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만들어 온 숱한 애국지사와 독립투사와 산업전사와 민주운동가와 우리 조모부와 부모의 혼과 얼이 서려 있다. 식민지 때 나라 안에서 이 노래를 부르지 못한 것이나 윤치호가 친일 행적을 한 것과 상관없이, 그 전에 이미 그 노래는 우리 겨레 전체의 노래가 되었고, 어느 개인에게 그 작사의 공이 돌아가지 않는 국민가 애국가였다. 

남북이 통일될 때 통일 조국의 애국가도 현 애국가가 되어야 한다. 남북이 분열되기 전에 우리 겨레가 50년간 함께 불렀던 노래이기 때문이다. 누가 현 애국가를 폄훼하는가. 그는 조국 광복을 위해 피 흘린 선열의 희생을 헛되게 하는 비애국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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