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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1920s

“독립선언서에 들었던 교회유력자 만기 출옥, <기독신보>, 1921년 11월 9일

지난 4일에 출옥된 17인 중 8명은 교회 내 목사 전도사들

실로 하루가 천년 같은 철장 생활을 만 3년간이나 계속하던 독립운동의 수령 47인 중에 지난 11월 4일로 형기를 마치고 새 세상을 구경하게 된 이는 17인인데, 그 중에 8명은 예수교회 내에 유력한 목사와 전도사들이었다. 당일 그들이 복역하던 경성감옥 문 앞에는 그들의 가족들과 남녀 교우들이 이른 아침부터 답지하여 수 천의 군중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그 중에는 경성 내에 최병헌(崔炳憲) 감리사와 이상재(李商在) 씨와 인천 감리사 김찬흥(金燦興) 씨와 수원지방 감리사 현석칠 씨까지 옛 친구의 얼굴을 맞고저 감옥문 밖에서 떨고 기다렸는데, 그들이 나오기를 시작하던 때에는 반가운 얼굴을 대하고 따뜻한 손을 붙잡고자 실로 잡답한 중에, 부인네들은 반갑게 인사 한 마디 못하고 섭섭히 돌아간 이도 적지 않았더라. 

당일 출감한 이들은

선천교회 목사 양전백 梁甸伯

정동교회 목사 이필주 李弼柱

해주교회 목사 최성모 崔聖模 

수표교교회 목사 신석구申錫九

평양교회 목사 신홍식 申洪植

정동교회 전도사 박동완 朴東完

청년회 간사 박희도 朴熙道

연희전문학교 졸업생 김원벽 씨 등 제씨인데, 그들은 모두 신관도 과히 상하여 뵈이지 아니하고 얼굴에는 웃음을 띄고 여러 사람을 맞으나, 그들을 맞는 여러 친구 중에는 무엇인지 슬픔의 정서가 떠오르는 듯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