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과 교회가 대형 건물 지으면서, 지도자들의 도덕적 해이로 돈/재산 문제로 분쟁
신구 대결(청년층 대 노인층, 자유신학 대 보수신학, 한국인 대 선교사)
1923년
1월 서울 각황사에서 조선불교총무원과 조선불교중앙교무원 사이에 사무실 문제로 난투극
4~10월 평양 장로교회, 서문외교회 건축 문제로 분규, 난투극, 김선두 목사 사임
5월 대구남성정교회 자치파(이만집 목사) 대 노회파(선교사파) 간 예배당 재산권 문제로 활극
11월에는 평양 회중교회 재산권 문제로 분쟁
1924년
사회주의자들의 반기독교 운동이 지속되면서, 평양 예수교를 비판하는 「開闢』지의 ‘예루살렘의 조선’ 담론 등장
군산, 재령, 해주, 개성 등 주요 도시에서 반기독교 운동과 김익두 부흥회 반대 운동 전개.
북간도 용정촌에서는 김익두를 권총으로 위협하는 사태 발생
1925년
3월부터 길선주 목사에 대한 공개 비판
1926년
봄부터 길선주 목사 비판
성천교회에서 노동 상조회 간부 출교 문제로 전도사 설교를 방해하는 등 폭행
전북 이리교회에서 김중수 목사 배척 운동, 재판 결과 목사는 해임, 두 장로는 휴직
평남 영유교회에서 치병 안수기도를 핑계로 목사가 여신도를 성추행
황해 장연교회에서 목사 반대파가 불량배를 고용해 사택에 침입, 폭행
11월 마산(문창)교회에서 박승명(朴承明) 목사의 여신도 성추행으로 분규
1927년
3월 평양 장대현교회 당회가 청년파 네 명을 책벌하자, 이들은 강단 위로 올라가 그 부당성을 말하려고 시도했고, 장로들이 제지할 때, 이 모 장로의 아들과 다른 청년들이 올라와서 네 명을 구타하면서 격투가 벌어짐, 결국 동사목사 변인서 사임
4월 당시 대구에서는 남성정교회 소유권 소송에서 자치파가 승리하고, 인위적 파벌제도의 타파와 자유신앙 정신통일로 종교개혁을 내세움
마산에서는 박승명 목사가 사임하자 지지파와 선교사 중심의 반대파가 충돌.
1928년
1월 길선주 목사는 “성역 25주년 기념식”을 거행하고 원로목사로 추대된 후 장대현교회 신도 500명과 함께 이향리교회로 분립.
......이상은 옥성득, "평양 기독교 역사 09] 장로교회 분쟁: 김선두, 길선주, 변인서 목사 배척 사건, 1923-1934," <기독교사상> (2019년 10월): 143-153 요약 https://www.dbpia.co.kr/pdf/pdfView.do?nodeId=NODE09216369
......
1933년
6월 대구남성정교회 노회파에서 재건 예배당 신축 준공 (교인 400명)
7월 경남노회 이단(신비주의, 무교회) 선전죄로 울산과 양산의 목회자와 장로 면직, 제명
당사자들 불복하고 난동—이놈, 저놈, 죽일놈, 사탄의 사자 등 폭언
(소결) 삼일운동 후 문화정치가 시작되면서, 핍박에서 벗어난 교회는 양적으로 성장하고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예배당 신축 시대가 도래했다. 교회에서도 자본주의 논리가 지배했다. 건축헌금을 많이 한 부자 장로들의 발언권이 올라가면서, 목사와 장로간의 다툼이 늘어났고, 교권 투쟁이 시작되었다. 청년층은 노인 목사의 고리타분한 설교에 식상하여 배척운동이 일어나 신구 대립이 심화되었다. 사회주의의 반기독교운동에 움츠러던 교회는 사회 사업은 줄이고 대신 내부 문제로 분쟁했다.
1929년 미국의 대공황으로 선교 지원금이 감소하자 상황은 악화되었다. 식민지 경제는 위기에 빠졌고, 집과 땅을 잃은 농민들은 만주 이민 대열에 합류해 유랑민이 되었다. 교역자들은 경제난에 시달렸고, 생존을 위한 파당주의, 패거리 정치가 증가했다. 이렇게 교회 내부에서부터 무너진 후, 1930년대 말 전시 상황에서 신사참배가 강요되자, 지도자들은 교권을 유지하고 생존을 모색하기 위해 찬성했다. 결국 1940년대에는 태평양전쟁을 지원하며 기독교 정신과 교리를 훼손하는 배교 행위까지 했다.
한국 교회는 지난 100년 간 교회 분쟁과 분열이 심화되었는데, 그 핵심은 재산권, 돈 문제였다. 교회가 싸우면 누가 사적 이익을 가져 가는지 살펴보면 된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고 은 30에 파는 가롯유다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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