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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평양과 기독교

[파친코 5부까지] 2 백이삭은 누구인가?

[파친코 5회까지를 보고] 보유론과 초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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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년 예수회 선교사 마테로리치의 <천주실의>로 대변되는 보유론은 동서문명과 동서종교의 첫 만남을 보여준다. 기독교를 당대 최고 문명을 만든 유교에 적응시키는 예의를 갖춘 태도였다. 고상한 유교의 윤리와 인륜(오륜)은 인정하지만, 잃어버린 전통인 원시 유교의 유일신론인 천륜, 곧 首倫을 기독교로 보충한다는 보유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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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기독교는 유일신론 외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가족 범위를 초월하는 사회를 위한 희생적 보편적 사랑, 사후 심판과 영생이라는 우월성과 초월성을 가지고 있다. 초유론이었다.
 
3
<파친코>는 1910년대에 시작한다. 아직 유교의 도덕과 사회계급 의식이 강한 때였다. 그것이 일제의 식민지화/자본주의화 과정에서 무너져간다. 돈이 윤리가 되는 시대가 왔다. 그러나 새로운 도덕과 윤리가 기독교에 의해 제공되고, 3.1운동에서 교회는 민족 독립을 위해 큰 희생을 치른다. 그 과정에서 평양 기독교인 백이삭의 형도 죽는다. 이삭은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일본에 있는 한인 선교를 자원한다. 오사카로 가는 길에 부산에서 쓰러져 선자를 만난다. (사진: 쓰러진 모습에 놀라는 여인들, 십자가 밑 예수의 모습이 스친다.)
 
 
이삭은 기독교의 희생, 사랑의 가치를 구현하는 이상적 인물이다.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와서 보여준 초유론의 첫 실례가 1919년 이삭 형의 3.1운동 참여와 정치적 정의를 위한 항의와 희생이었다면, 두번째 예가 이삭의 초월적 사랑이다. 이삭은 한국기독교 2세대가 만든 자기희생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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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중인 미혼모 선자를 보고 이삭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그녀를 구하고자 한다. 1931년이면 여전히 한국에서는 유교 윤리가 강력했기에, 가난한 어부의 딸 식모 미혼모가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고 살기는 어려웠다. 이삭은 통상적 유교 사회 윤리를 뛰어넘어 선자와 결혼하고 오사카로 간다. 초유론의 실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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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가 출신 오사카의 요셉과 경미는 선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 더 이상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다. 기독교인의 윤리적 태도였다. 혼전 임신을 따지지 않는다. 함께 힘을 합해 어려운 살림살이를 꾸려나간다. 초유론이다. 백이삭은 한국장로교회에서 최저생계비도 안되는 월급 15엔을 받고 목회를 한다. 초유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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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 한국교회는 보유론도 초유론도 상실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도 버렸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윤리도 잊어버렸다. 경천이라야 타종교와 함께 갈 수 있고, 애인이라야 타종교와 사회 앞에 떳떳이 설 수 있다. 신앙도 없고 도덕도 없는 천박한 자본주의 맘몬 앞에 절하며, 이웃을 대상으로만 이용하고 있다. 우상파괴적 보유론 대신 우상숭배요, 이웃 사랑의 초유론 대신 물신 숭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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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가 한인2세에게서 나온 이유는 그래도 2세대 전의 신앙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해외 망명지/이민지이기 때문이다. <파친코>를 보는 한국교회가 당황하고 낯설어 하는 이유가 바로 그들이 1930년대에 가졌던 보유론과 초유론을 버리고, 천박한 자본주의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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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에 한국교회는 100년 전 백이삭을 만들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하기에 비신자들은 묻는다. "백이삭이 과연 그런 일을 하는 게 가능한 일이었나요? 소설이니까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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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대의 김대건은 실존 역사 인물
1930년대의 백이삭은 소설 속의 인물
2020년대의 백이삭은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