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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김교신

1945년 4월 25일 김교신 별세

발진티푸스에 감염, 급서(急逝)하다.

세가 가나안을 바라보며 승천하듯 해방 직전에 별세하니, 아깝고 통절!

--- 노평구, "김교신 선생 해적이," <나라사랑> 17 (1974년), 19.

45년 45세에 돌아가신 지 20년, 1974년에 <나라사랑>은 김교신 특집을 꾸몄다.

그 표지와 안표지에 실린 사진 한 장을 올린다.

1938년 양정고보 앨범에 실린 친필, "己所欲 施於人"

공자의 말을 긍정문으로 표현한 예수의 말씀이다. 공자의 말이나 예수의 말이나 같은 뜻이다.

선비 김교신의 곧은 정신이 담긴 달필이다.




80년 전 한 선비가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손기정을 만들고

일기를 쓰고 성서를 가르치고 <성서조선>을 만들며, 성서 위에 조선을 만들기 위해 애쓰다 가셨다.

역사는 믿는 바 大義를 위해서 얼마나 많이 희생했는지

그 피땀의 무게를 다는 시공간이다.

저울대 한 쪽에 세상을 올리고

다른 쪽에 그 사람을 올려서

기우는 쪽으로 역사는 흘러간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믿음의 사람이란

세상의 가치와 그 사람의 가치를 저울로 달았을 때,

그 사람의 무게가 더 나가는 사람을 말한다.

대개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일찍 데리고 가신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교신 선생이 그러했다.

함량 미달이면 겨울 혹한에 다 죽는다.

한국교회가 아직 全滅을 면한 것은

그나마 김교신과 같은 선비 예수교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 통장에 저금된 그 '승리한 교회'의 보물에서 나오는 이자로

지상의 '전투하는 교회'는 생계비를 받는다.

교회사는 그 보물 통장을 잠시잠시 확인하는 작업이다.


교회사가는 전투병의 전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전쟁 특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