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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 교수의 글 /단어 공부

마태 7:1 비판하지 말라?

일제말에 번역된 개역의 '비판' 때문에 한국교회에서 오랫동안 비판적 사고는 정지하고, 기득권자들은 종교 재판으로 불의를 행해 왔다. 한국 사회도 비판하는 사람을 비판하고, 재판의 불의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았다.

마태 7:1 Μὴ κρίνετε ἵνα μὴ κριθῆτε
(KJV, 1616) Judge not, that ye be not judged.
(文理譯, 1856) 勿議人則不見議
(로스역, 1887) 사람을 평론치 않은즉 너희 평론을 보지 않나니
(구역, 1906) 폄론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남을 폄론치 말라
(개역, 1938)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공동번역, 1971) 남을 판단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받지 않을 것이다
(NIV, 1979) Do not judge, or you too will be judged.
(NRSV, 1989) Do not judge so that you will not be judged.
(개정개역, 1998)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새번역 2001) 너희가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심판하지 말아라.
(새한글, 2021) 남을 판가름하지 마세요. 그리하여 여러분이 판가름받지 않도록 하세요.

한국 개신교인이 흔히 쓰는 개역개정본 번역 때문에 "κρίνετε = judge = 재판하다"의 원뜻이 "비판하다"로 이해되어 왔다. 그래서 대학에서는 학문적 비판적 사고를 하는 멀쩡한 교수도 교회로 오면 비판하지 않고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비판은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필요하다. 교회 안에 비판이 사라지면서 심히 부패하게 되었고,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비판하는 세력을 더 강하게 비판하고, 의논하고, 평론하고, 저주하고, 판단하고, 폄하하고, 재판하여 출교까지 감행한다. 성경에서 오직 재판장은 하나님 뿐이라고 했으나, 지금 한국 교회는 종교 '재판'이 횡행한다.

과부의 송사를 무시하고, 힘없는 전도사와 티끌 같은 부목사는 집어 삼키고, 자신의 눈 안에 있는 대들보는 보지 못한다. 예수 당시나 지금이나 돈 있고 힘 있는 종교 지도자들은 재판관을 매수하고, 재판관은 정의를 헐값에 팔아넘긴다.

그들은 다시 한번 야고보서 4;12을 읽고 두려워할 일이다. 여기서 사용하는 동사도 마태 7:1의 κρίνετε = judge=재판이다.

There is only one Lawgiver and Judge, the One who is able to save and to destroy; but who are you who judge your neighbor?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교회 안에서 건설적 비판은 하되, 남을 죽이려는 폄하와 재판은 삼가야 한다. 재판/심판을 받지 않으려면, 불의한 재판을 중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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