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6,000명의 마을인 선천의 지역 교회 사역은 언급할 가치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이른바 북교회와 남교회, 두 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한번은 방문자 한 분이 두 교회가 서로 아주 가까운 것을 보고는 무엇 때문에 갈라졌는지 물었습니다! 그저 모교회가 너무 많이 커졌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북교회 [양전백] 목사는 한국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33인 중 한 명으로, 1919년 3월부터 1921년 10월까지 감옥에 있었습니다. 남교회 목사는 지금 정치범으로 복역 중입니다만, 교회가 그 자리를 임시로 맡은 목사뿐 아니라 그의 가족도 부양하고 있습니다. 각 교회에는 부목사 한 명씩이 있는데, 둘 다 신학교 학생입니다. 북교회의 등록 교인은 2,000명이 넘고 남교회는1,600명 정도 됩니다. 북교회에는 장로 12명이 있고 남교회에는 7명이 있습니다. 주일학교가 가장 흥미롭습니다. 학생수가 많아서 공부는 세 차례로 나누어 합니다. 어린이들은 오전 9시에 모이고, 전적으로 한국인들이 감독하는데 아주 장관입니다. 약 1,000명의 어린이들이 매 주일 두 교회에서 모입니다. 아이들이 자기 집으로 가면, 여성들이 모여서 10시 30분에 공부를 시작합니다. 여자 선교사들이 이 주일학교를 감독합니다. 북교회 등록은 832명이며 평균 출석자는 562명입니다. 남교회 쪽 등록은 714명이며 평균 출석자는 550명입니다. 여성들은 나이와 교회 내 지위에 따라(세례자, 학습자, 초신자) 분반됩니다. 강의는 가능한 모든 장소--성경학교, YMCA 건물, 심지어 근처에 있는 사찰의 집, 길 건너 교사 자택까지--에서 이루어집니다. 남자들이 마지막으로 옵니다. 그들의 주일학교는 전적으로 한국인들이 담당합니다. 평균 주일학교 출석수의 합계는 북교회가 2,000명 이상, 남교회는 1,400명 이상입니다. 예배는 오후 2시 30분에 열립니다. 북교회 출석수는 약 1,000명, 남교회는 800명 이상입니다. 두 교회 모두 각각 같은 시간에 교회 직원들의 인도로 어린이를 위한 별도 예배를 드립니다."
--1922년 선천 선교지부 연례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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