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대/1920s

1926. 2. 12 “자기 생활에 철저하고 깨끗한 삶”을 살고 이완용이 죽다

1926년 2월 12일 이완용이 죽자

당시 조선에 거주했던 일본인들을 위한 <朝鮮及滿洲>라는 잡지에 ‘東邦生’의 이름으로 “李完用侯の死”(본문 제목은 “逝ける李完用侯”)라는 추도문이 실렸다. (1926년 3월, 제220호, 67-69.)


이완용이 을사조약과 일한병합에 나선 경위를 설명하면서, 배일파의 우두머리였던 친미개화파인 이완용이 친일파로 돌아서게 되자 일본인들조차 놀랐다고 쓰고 있다. 이완용은 일본어를 구사하지 못했고, 친하게 지낸 일본인 역시 없었다. 일본인 관료들에게는 이토 히로부미의 신임을 얻은 자로만 알려졌고 능력과 신의가 있는 인물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재산이 많지만 돈을 흥청망청 쓰지 않고 검소한 삶을 살았다고 하는데, 돈을 모으고 잘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 자기가 죽으면 자기 일가를 보호해 줄 것은 돈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글에는 사심이 없고 자기 생활에 철저하고 깨끗한 삶을 살았다고 증언한다.


이를 뒤집어 보면, 이완용은 철저히 자신과 자기 집안을 위해 나라를 팔았다. 일본인도 놀랄 정도로 機會主義者였고, 철저한 私心의 사람이었다. 나라를 팔아 부귀영화를 누리면서도, 부를 축적하고 남을 도와주지 않았다. 공을 희생해 사적 이익을 취했다.

이런 것을 “자기 생활에 철저하고 깨끗한 삶”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악의 진부성. 이완용의 경성이었다!


참고

이완용 사망 <동아일보> 사설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2&mbsIdx=767527&cpage=1&mbsW&select&opt&keyword


'연대 > 1920s'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29 이용도, 거룩한 바보 시므온  (0) 2019.02.14
1929 교회의 사활 문제  (0) 2019.02.10
1922 공주 목회자 사경회  (0) 2019.01.11
1921 게일의 창세기 1장 번역  (0) 2019.01.11
한국교회사 요약  (0) 2019.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