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안교회는 1887년 9월 27일에 조직되었는가, 9월 20일에 조직되었는가?
I. 1887년 9월 27일 정동장로교회가 조직되다
새문안교회로 발전하는 정동장로교회는 한국 첫 개신교 조직 교회요, 첫 조직 장로교회였다. 즉 그 이전에는 정식으로 설립된 교회가 없었다. 이 날 한국인 세례교인 14명[의주 교인 백홍준 등 + 소래교인 서상륜, 서경조, 최명오, 정공빈 등 + 서울교인 노춘경 등]이 참석했는데, 장로 2인을 선출하여 언더우드 목사와 함께 당회를 조직했다. 이 날 만주의 존 로스 목사가 초청을 받아 참석하여, 자신이 번역 출판한 한글 성경의 결실인 한국인 신자들을 만나는 감격을 누렸다.
언더우드의 사택과 교회가 조직된 사랑방(오른쪽)
한국인 장로 2인의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이들은 10월 1일 주일에 안수를 받았다. (아마도 한 명은 서울의 첫 세례교인인 노춘경일 것이다. 서상륜과 백홍준은 아니다.) 이 당회는 한국 전체 장로교회를 치리하는 당회였다. 즉 한국의 유일한 조직 교회의 당회였다. 그러나 얼마 후 두 사람은 치리를 받아 두 명 모두 장로 직을 박탈 당했다. 장로나 목사나 항존직이지만 종신직이 아니다. 교회 치리와 책벌을 받으면 그 직위는 해직될 수 있다.
새문안교회는 1887년 9월 27일 이 날을 교회 설립일/창립일로 잡는다. 그러나 이날은 또한 한국 장로교회의 생일이기도 하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가 불완전했듯이한국 첫 교회와 당회도 불완전했다.
II. 최근 한 교인이 의문을 제기하다
그런데 최근 다음 두 자료 때문에 논란이 생겼다. 한국에 있는 교회사 학자들이 당장 풀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과연 어떤 난제인지 살펴보자.
자료 1. 10월 7일 언더우드가 쓴 편지, The Church at Home and Abroad 3 (February 1888): 196.
그 전 주 화요일(9월 27일)에 14명의 입교인으로 교회가 조직되었다. 지난 60년 이상 이 글을 기초로 새문안교회는 1887년 9월 27일을 교회 설립일로 기념해 왔다.
이 편지의 출처는 Church at Home and Abroad 3 (February 1888): 196이다. 한국에는 이 부분이 일부만 복사되어 있어 페이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아래에 그 페이지 전체를 올린다.
자료 2. 1887년 9월 30일자 언더우드가 엘린우드 총무에게 보낸 편지
(옥성득 편역, <언더우드자료집 1권>(연세대학교 출판부, 2005) , 77에 번역되어 있다.)
I would add that on Tuesday night last we completed the organization of the Christian church on Korean soil with a roll of 14 members and added one more to our number on Sunday last.
지난 화요일 밤 우리는 14명의 세례교인으로 이루어진 한국 최초의 기독 교회를 조직했으며, 지난 주일에 한 명을 입교인으로 추가했음을 알려드립니다.
9월 30(금) 기준으로 보면 ‘지난 화요일’은 9월 27일이 맞으나, 그 뒤 문장 added one more to our number on Sunday last”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가 문제이다. 지난 주일 한 명이 더 늘었다고 하는데, 그 주간에는 주일이 없기에 그 전 주일인 9월 25일로 보아야 하고, 그렇게 보면 14명이 모인 교회 창립일은 그 주 화요일인 9월 20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다시 정리하면 다음 표처럼 된다.
윤경로 교수의 2018년 12월 26일자 이메일에서 옮김
새문안교회의 한 교인(박 집사)은 이 두 자료에서 먼저 쓴 편지, 곧 언더우드가 직접 총무 엘린우드에게 보낸 9월 30일자 편지 내용을 중시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면 새문안교회 창립일을 9월 20일로 1주일 앞당길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렇게 하기에는 두 번째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편지가 부담스럽다.
두 편지의 공통점은 "지난 화요일 밤"에 14명 입교인(members = 세례 받은 후 교회 회원으로 받아 들인 자)이 모인 교회가 조직되었고 "지난 주일"에 입교인 1명이 추가되었다 사실이다. 반면 장로 2인을 세운 것은 10월 7일 편지에만 나온다. 이를 다시 달력에 날짜대로 표시하면서 정리해 보자.
III. 9월 27일을 변호함언더우드 자료집을 낸 자칭 언더우드 전문가이므로 내가 답변하지 않을 수 없다. 1주일 차이로 쓴 이 두 개의 일차 자료만 읽으면, 교회 측의 문제 제기가 어느 정도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두 자료만 보면 안 된다. 사료를 읽을 때 해석과 비평과 다른 자료를 비교 보충해야 한다. 1887년 여러 선교사들의 편지를 함께 읽어야 한다.
1. 1887년 10월 11일(화) 아펜젤러 일기
가장 중요한 제3의 자료가 아펜젤러의 일기이다. 1887년 10월 11일자 화요일이므로 1주일 전 사실을 잘못 적을 가능성은 적다.
"지난 주에는 심양[봉천]에 있는 로스 목사가 이곳을 방문했는데, 두 사람의 한국인 신자를 데리고 왔다."
2. 1887년 8-10월 정동에서 일어난 일을 날짜순으로 정리해 보자.
자료들을 볼 때 세례와 입교를 구분해야 한다. 세례교인과 "member 입교인"은 다르다.
8월 28일 (일) 세례 3명 추가하여 수세자(세례교인) 14명이 됨 (Heron to Ellinwood, 1887. 9. 4.)
이 헤론의 편지에 따르면 “이곳에서 벌써 11명의 세례교인이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언더우드 목사를 도와 세 명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already we have eleven baptized men here, last Sabbath I assisted Mr. Underwood baptizing three.]라고 했다. “이곳”은 한국을 말한다. 그러나 로스의 글에 따르면 [9월 27일] 교회 조직하던 날 밤에, 1명이 추가로 세례를 받고 수세자가 14명이 되었다고 했다.
9월 23일 (금) 알렌 의사가 서울을 떠나 제물포로 감 (미국 행)
9월 25일 (일) 조용히 지나감. 주일에 교회를 조직하지 않음.
9월 27일 (화) 입교인 14명(한 명은 그날 밤 세례를 받음)으로 정동교회 조직 + 장로 2명 피택
Q. 왜 화요일 밤에 조직했을까?
A. 1) 아마도 John Ross가 월요일 밤이나 화요일 저녁에 서울에 도착했기 때문에 그가 참석한 가운데 교회를 조직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듯. 2) 합법적 포교 활동을 강조하던 알렌 의사가 서울을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금은 홀가분한 상황에서 조직했을 것이다.
Q. 화요일 밤에 세례를 받은 자는 바로 입교인이 되었을까?
일단 이날 밤 세례 사실을 언급하는 로스의 자료를 보자. 이날 헤론 의사와 함께 참석한 로스의 다음 글을 보면 이 날 참석한 14명 중 1명이 세례를 받았다. (언더우드의 글에는 14명의 입교인으로 교회를 조직했다는 말만 있다.)
A gentle tapping at a paper window secured our entry into a room, where we found a company of fourteen well dressed, intelligent -looking men. One of these was baptized that night, but the principal business was the election by the others of two men to be their elders. Two were unanimously elected, and the next Sabbath ordained.(Ross, “The Christians Dawn in Korea,”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 (April 1890): 247.)
A. 로스는 이날 밤 주된 일은 장로 2인을 피택(하여 교회를 조직)하는 일이었다고 하고, 두 사람의 장로 피택이 먼저 다른 교인들(13명의 입교인)에 의해 이루어진 후, 한 명이 추가로 세례를 받았다고 말한다. 즉 (8월에 있던 세례교인 14명 중 한 명이 불참한 가운데, 혹은 14명 중 아직 입교인이 되지 못한 자들도 있을 수 있음) 13명의 입교인 가운데 두 명의 장로를 선출하고, 이어서 한 명이 세례를 받았다.
비록 로스의 글이 1890년에 기록된 것이나, 앞의 다른 내용들과 서울에서의 여러 사실 묘사가 정확하므로 화요일 밤 세례 사실은 분명히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장로를 선출할 때는 아직 입교인이 아니었다.
A-1: 따라서 제1의 가능성은 14명의 입교인이 있었는데, 13명만 참석하여 교회를 조직한 경우이다. 그러면 27일밤에 세례를 받은 자는 10월 2일 주일에 입교인이 되었을 수 있다. 그러면 9월 27일에 14명의 입교인으로 조직하고, 다음 주일에 27일 세례 받은 자를 회원으로 받아 입교인이 15명이 되었다.
만일 9월 30일자 편지에서 언급한 "지난 주일"을 25일로 본다면, 25일 기존의 14명의 세례교인 중 한 명이 입교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10월 7일자에서 말한 추가 입교인은 27일 세례를 받은 자이므로 문제가 없다.
A-2: 언더우드의 9월 30일자 편지는 9월 27일 지난 주 화요일(27일) 14인의 입교인으로 교회를 조직했으며, 그리고 "지난 주일"(25일)에 한 명이 추가로 입교했다고 하여, 날짜 순서에 혼동을 주고 있다. 그가 last Sunday 대신 Sunday last처럼 불어식으로 형용사를 뒤에 붙이는 경우가 있지만, 문장에서 시간 상 순서를 바꾸어 쓰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렇다면 이 지난 주일은 어떻게 볼 것인가? 하나의 가능성은 9월 30일자 편지를 쓰기 시작한 날은 9월 30일이나, 중간에 멈추었다가, 10월 3일 월요일에 발송하기 위해 다시 썼을 수 있다. 이 교회 조직 사실이 중요하므로, 10월 7일에 다시 정리하여 엘린우드에게 보내면서 잡지에 실어줄 것을 부탁했을 것이다. 즉 두 편지를 함께 동봉하여 엘린우드에게 보냈으므로, "지난 주일"(10월 2일)에 대해서 엘린우드나 언더우드가 혼동할 이유가 없었다.
Q. 이 사건을 왜 헤론은 10월 1일자 편지에서 언급하지 않았을까?
A. 1) 9월 30일자 언더우드가 편지로 자세히 보고했기 때문이다. 우표와 종이가 비싸 선교사들은 자신의 일만 두세 장에 써서 보내던 시절이다.
2) 헤론은 9월 4일, 9월 11일, 10월 1일에 편지를 썼다. 만일 교회 조직이 9월 20일 화요일에 있었더라면 9월 21~28일 어간에 편지를 썼을 것이다.
9월 30일 (토) 언더우드 편지
I would add that on Tuesday night last we completed the organization of the Christian church on Korean soil with a roll of 14 members and added one more to our member on Sunday last.
지난 화요일 밤은 9월 27일 밤이다. 그날 14명의 교인으로 교회를 조직했다.
10월 2일 (일):장로 2인 안수식 + 1 명 입교식.
장로 안수식은 화요일보다 주일에 좀 더 형식을 갖추어서 한 듯하다. 9월 27일 세례받은 자가 10월 2일 입교인이 되어 입교인이 15명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때 전체 한국인 교인은 23명이었다. (1890년 언더우드 테네시 연설문, 언더우드 자료집 1권 p. 324)
10월 7일 (토) 언더우드 편지 (Church at Home and Abroad에 실림)
A week ago Tuesday we completed the organization of a Presbyterian church by the election of two elders, whom we ordained last Sunday. We organized with fourteen members, and took in one more on Sunday.
일주일 전 화요일에 교회 조직 = 9월 27일. 일주일 전 화요일이라고 확실하게 표현했으므로 다르게 볼 수 없다.
결론: 1887년 9월 27일 새문안교회가 조직되었다.
1. "지난 화요일"이 더 중요하다. 9월 30일자 편지나 10월 7일자 편지 두 자료가 지난 화요일, 일주일 전 화요일, 곧 9월 27일에 기독 교회(장로 교회)가 14명의 입교인으로 조직되었다고 동일하게 서술한다. 그날 두 명의 장로가 피택되었고, 1명이 세례를 받았다. 로스 목사도 참석했다. 알렌 의사가 서울을 떠난 후 교회를 조직했다. 알렌이 있을 때 굳이 조직할 필요가 없었다.
2. 한 명의 입교 문제: 27일 세례를 받고 10월 2일 주일에 입교인으로 추가되어, 전체 입교인이 15명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새문안교회는 교회 설립일을 바꿀 필요가 없다. 다른 교회와 달리 한 설립일을 꾸준히 지켜온 새문안이 예배당은 자주 바꾸더라도 설립일은 고수할 수 있어, 나도 다행으로 생각한다.
* 추가: 앞으로 쓸 논문에 넣을 추가 자료가 있다. 논문에서 공개하겠다. 결론은 9월 27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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