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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1880s

루터와 산돼지, 예수와 산돼지, 나와 호주산 백돼지

산돼지 루터 
"There’s a Wild Boar Loose in the Vineyard!” 루터는 교황 레오 10세로부터 '포도원에서 날뛰는 산돼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종교개혁은 그 세련 '돼지' 못한 포도원에서 분탕질 하는 산돼지가  시작했다.
 


텬주쟈오 꿀꿀

1860년대 중국에서 반기독교 양반들이 예수를 산돼지로 그렸다. '천주교'의 중국 발음이 돼지가 '꿀꿀'거리는 소리와 유사하기 때문에 차용했다. 산돼지인 예수를 죽여라. 이것이 반기독교 구호였다. 그런 그림을 담은 반기독교 서적이 <벽사기실>인데, 한국에도 유입되어 1888년 영아소동의 원인이 되었다. 

브라운 선교사와 호주 백돼지

1962~69년 호주장로회가 마산/통영/충무/거제에 파송한 존 브라운 선교사에 대한 책 <호주선교사 존 브라운-변조은 John P. Brown: Man with a Mission> (한호기독선교회, 2013)에 다음 구절이 나온다. 그는 1964~72년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구약과 히브리어와 가르쳤으며, 영등포산업선교회를 도왔고, 1972년부터 호주장로회총회 에큐메니컬선교와 국제관계부에서 책임자로 일했다. 현재 호주 멜버른에 생존해 계신다. 농부나 노동자를 위해 일하신 missio Dei, missional church의 실천가였다.

"거제도에서 교회를 돌보던 시절변목사는 농부들이 가축 개량 사업을 통하여 농가 수입을 높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여 호주에서 양과 염소와 돼지를 들여왔다. 1966년 한국 농촌 교회 교우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하여 그는 호주 산 대형 흰 돼지와 샤넨 염소(Saanen goats)들을 수입했다그를 파송한 빅토리아 선교회가 적극 지원하였다기도와 눈물로 헌금하는 교우들을 생각하며 그는 선교비를 조금이라도 아껴서 한 마리의 돼지라도 더 가져오고 싶었다변목사는 자신이 직접 호주에 와서 성도들이 돈을 모아 사준 돼지와 염소들을 배에 싣고 자신이 친히 43일 동안이나 같은 배를 타고 가축들에게 여물을 먹여 가면서 같이 먹고 자며 부산까지 왔다변목사는 그의 조수요동역자였던 권오성씨의 협력을 받아가면서 이들 돼지와 염소들을 분양 해주고 또 번식시켜 나갔다."(42~43)

그 흰(pink) 호주 돼지 두세 마리를 우리 집에서 키워 내가 매일 밥을 주었다그 후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고 내가 중학교에 진학할 때에는 수십 마리로 늘어났다가장 큰 놈은 높이가 거의 1미터길이 약 2m가 되어 어른도 타고 다닐 수 있었다물론 나는 내 애돈(?)을 잠시만 탔다. 너무 커서 타고 다닐 수는 없었다. 나와 호주 돼지와의 관계는 각별했다그 놈들이 얼마나 머리가 좋고 깨끗하고 (대소변을 잘 가리고잘 자라는지 키워 본 자는 안다사람이 잘못 키워서 더러워진다. 한 번은 한겨울에 새끼가 너무 많이 태어나 방 안에서 여러 마리를 우유를 먹이며 키웠다이 돼지들은 다 족보가 있어서 태어나면 얼마 후 귀에 구멍을 몇 개 내어 고유번호를 부여했다한 동안 거제도 흰 돼지는 우리 집에서 퍼져 나갔다.


집돼지는 안돼지

원래 12간지의 (돼지)는 집돼지(pig)가 아니라 산돼지(boar)이므로, 1959, 1971, 1983년생 등 돼지띠들은 산돼지의 활동성저돌성건강성[흙과의 친화성]을 배우면 좋을 것이다

고대근동 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성경의 돼지는 더러운 이미지가 강하다. [더운 지역의 돼지고기는 쉬 상한다.] 그러나 원래 돼지나호주산 돼지그리고 요즘 새로운 농법에서 키우는 돼지는 깨끗하다키우는 사람이 더러우면 돼지도 더럽다

요즈음에는 산이나 교회나 산돼지가 많지만 민폐 투성이이다그러나 예수 같고 루터 같은 진정한 산돼지가 나와서 한국 교회 포도밭을 새롭게 개혁할 필요가 있다

야생이 되려면 광야 생활이 필요하다사료를 먹고 사육되는 돼지는 산돼지가 될 수 없다사육된 돼지도 광야로 가면 1년 안에 코 쪽이 길어지고 야생 산돼지가 될 수 있다

산돼지 루터처럼 기존 관행을 깨는 산돼지가 필요한 시점이다산돼지보다 못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돼지

------------추가

나는 저런 시골 동네에서 태어나, 국민학생 때 호주선교사 존 브라운 목사님이 호주에서 가지고 온 어린 흰 돼지들을 많이 키웠다. 나중에 소만큼 컸다. 한번은 브라운 선교사님이 내 고향 교회인 하청교회에서 설교를 하셨는데, 설교 중에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라는 찬송을 하셨다. 그것도 한국어로! 나는 그의 찬송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후 그 찬송은 내 애창곡이 되었다. 

"우리가 지금은 길 가는 나그네, 화려한 천국에 불원에 가리니 
이 세상 살 동안 주 예수 위하여, 우리가 힘써 일하세.
주 내게 부탁하신 일, 천사도 흠모하겠네.
화목케 하라신 구주의 말씀을 온 세상 널리 전하세."  

나는 이 찬송을 특히 강원도 군대 생활 3년간 한 밤에 보초를 설 때마다  뭇 별을 바라보며 조용히 속으로 불렀다. 20대 초반, 분단된 한반도의 한 산골에서 M16을 들고 그 노래를 부르며"천사도 흠모할 일, 화목케 하는 일"을 하자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