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대/1970s

1973 빌리 그레함 전도대회

빌리 그레함 전도대회, 1973

부흥회/전도대회와 정치성

김포공항에서 기자회견하는 한경직 목사 (대회장)와 빌리 그레이엄 부부

1973년 5월 30일부터 6월 3일까지 여의도 군용지인 5.16광장에서 한경직 목사를 대회장으로, 그레함 목사를 주 강사로, 김장환 목사를 통역 설교자로 하여 매일 50여 만 명, 연인원 320만 명이 모인 가운데 17개 교단이 연합한 초교파 대형 전도대회가 열렸다. 본 대회가 열리기 전 5월 17일부터 6개 도시에서 전도 대회가 열렸고, 연합 성가대 9,500명을 비롯하여 연인원 120만 명이 참석하여, 16,703명의 결신자를 얻었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도 집회였다. 신도 350만 명으로 20세기의 기적을 이룬 한국 교회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고 복음 전도의 사명을 고취했다. 마지막 날 100만 인의 밤에 그레함 목사는 매년 10% 이상의 경제 성장과 높은 교육 열을 가진 한국에서 매 10년마다 배가하는 한국 교회는 세계 선교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의 말은 예언이라기보다는 53-62년에 배가,  63-72년에 배가 된 것을 근거로 한 말이었다. 그것은 향후 20년간은 유효했으나, 1994년 이후 정체와 쇠퇴는 내다보지 못했다.) 

 

김장환 목사가 받침대 위에 서 있다. 이 전도집회로 영어와 웅변에 능한 그가 일약 스타가 되었다.

빌리그레함과 박정희

그레함은 대회 전 28일 백낙준 고문과 한경직 대회장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을 방문하고 적극적인 지원에 사의를 표하면서 성경전서 1권을 선물하고 “한국은 비록 정치 경제적으로는 강대국이 아니지만 정신적인 면에서는 세계적인 강대국”임을 강조한 후 “정신적인 강대국을 영도하고 있는” 대통령을 위해서 함께 기도했다.
1973년 5월, 박정희 대통령의 10월 유신 독재가 시퍼렇던 시절, 여의도 5.16 광장에서 '73 Crusade 빌리 그레함 전도집회가 열렸다. 한국에 도착한 그레이엄 목사는 집회를 허락하고 협조해 준 박 대통령을 방문하고 감사 인사를 했다. 그때 박 대통령은 이런 '명언'을 남겼다.

 

"요즘 사람들은 마음의 평정과 안정을 잃고 있어 큰 일입니다. 오직 종교만 이런 세속 풍조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 공산주의 국가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엄격하게 통제합니다. 만일 그런 공산주의 국가들이 늘어난다면 인류 사회는 더 많은 불안으로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Korea Herald, May 27, 1973)

유신 반대 운동으로 시끄러운 정세 때문에 사실 박의 마음도 평온하지 못했다. 반공 노선의 복음주의 기독교를 이용해 반대파를 용공 분자로 몰고 영구 독재를 꾀하던 박 대통령이, 만일 이 말대로 그 자신이 복음을 받아들였더라면 구원을 받았을 것이요, 한국 정치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했던 공산주의 정권, 인권과 민주주의를 부정했던 독재 정권, 그리고 그들을 지원했던 소위 복음주의자들이 1950-70년대 한반도에서 서로 공생 기생하고 있었다.

평가

윤항덕 기감 감독은 대회 성공을 그레함 목사의 영향력, 한국 교인의 신앙 열심, 정부의 적극 협조라는 3박자가 이룬 성취로 보았다. 근본주의반공 노선의 매킨타이어 목사가 주도하던 ICCC(국제기독교연합회) 계열의 군소교단은 그레함 목사가 선명한 반공주의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대회에 불참했다. 또한 자유주의 노선의 기장 측도 참석하지 않았는데, 한경직 목사와 그레함 목사가 유신 체제를 비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전도대회가 정부의 지원 하에 개최된 점, 김종필 국무총리의 지시로 6월 1일 밤이 군인의 밤으로 진행된 점을 지적하고, 모든 설교에서 정부에 대한 예언자적 비판이 결여된 점을 비판했다. 군인을 위한 밤은 당시 교계의 ‘전군 신자화 운동’과 연계되어 있었다. 

 

참고:

1.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EiSu5MPNq2Y 

 

2. 전도지

1973년 빌리 그레함 한국전도대회 광고지

 

'연대 > 1970s'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75 박형규 목사  (0) 2019.04.06
함석헌, 이 나라가 뉘 나라냐, 1970  (0) 2019.03.19
1975 김진홍 인명진 석방  (0) 2019.02.14
1971 김한식(金漢植) 한사랑선교회 설립  (1) 2019.01.25
1973 백낙준, 한국개신교사  (0) 2019.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