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대/1940s

1940년 3월 20일 신사참배 가결 후 노회 모습

1940 신사참배 가결 후 노회 모습

1938년 9월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신사참배를 국가 의례로 규정하고 참배 결의에 이어 평양 신사에 가서 참배했다. 총회 결의에 따라 1939년부터 총회, 노회, 교회는 회의나 국경일 등에 신사에 가서 참배했다.

다음은 1940년 3월 연화동교회에서 열린 평양 노회 38회 개회 모습이다. 개회 선언 후 교회 마당에서 <애국식>을 거행한 후 회의에 들어갔다. 애국식은 국기 게양, 국가 합창, 궁성 요배, 묵도 1분간, 국민서사 제창. 만세 삼창으로 진행되었다. "대일본 제국 만세"를 삼창했을 것이다. 이어서 평양 신사에 가서 참배했다.

훼절한 교회의 모습이다. 신사참배를 수용한 마당에 다른 애국 행위는 마다 할 이유가 없었다. 일제에 굴복한 교회는 향후 5년간 무슨 일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면서도 침묵했다.

그러나 최소한 총회 결의대로 실천했다. 지금은 총회 결의도 무시하고 개교회 마음대로 판단하는 사사(Judge) 시대, 부족장 시대가 되었다. 훼절하고 개교회 중심, 목사 중심이 된 한국의 여러 교회는 2019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면서도 침묵하는 다수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 어쩔 수 없는 일은 별로 없다. 스스로 평범하다고 여기고 그냥 순응하면서 살다 보면 그렇게 된다. 무사유(無思惟)의 죄가 한국 교회를 덮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