土倭란 악질 한국인 친일파 관리
1908-48년 용례에서 보듯이 토왜의 토는 토착인 곧 한국인을 뜻하고, 왜는 친일파의 뜻이었다. 악질적인 골수 친일파 관리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해방 이후에도 제한적으로만 사용했다. 많은 용례가 있으나 대표적인 것만 세 가지로 그 뜻을 살펴보자
1. 1908년 황현의 <매천야록>
1908년 의병들이 고종의 복위와 통감부 철수, 일본인 관리 폐지, 외교권 복권을 주장할 때, 일본어를 하는 한국인 통역관이 무고, 살인, 약탈 등을 일본인(外寇)보다 더 심하게 하므로, 그들을 土倭(토착인 왜구 = 한국인 친일파)라고 했다. 곧 외국인인 왜구보다 토착인 왜구가 더 악질이라는 뜻이다.
梅泉野錄 > 『梅泉野錄』 제6권 > 隆熙 2년 戊申(1908년) ② > 21. 義兵의 投書
義兵投書統監府, 要以四事, 一曰, 太皇復位, 二曰, 統監撤還, 三曰, 罷日本人官吏, 四曰, 繳還外交權, 時我民爲譯舌者, 誣人殺掠, 甚於外寇, 人謂之土倭, 慶北金田巿一區, 死者至百餘人
2. 1924년 <개벽> ;
군수 중에 토왜가 많았다. 군수들은 대개 다 한국인을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靑吾, “湖西雜感,‘ <개벽> 제46호 (1924년 4월 1일): 138.
白晝에 잠고대
忠南에서 土倭의 별명을 듯는 군수가 누구냐 하면 노상행인이라도 다 天安郡守 尹○求 君을 가르칠 것이다. 尹君은 언제부터 고리 알들한 大和人이 되얏는지 자기는 물론이고 가족까지라도 朝鮮 옷은 절대로 입지 안케 하고 日本 옷만 입게 하며 자녀들도 日本 말만 하게 한다. 그리고 日本人이 무슨 사업을 한다 하면 埋頭沒身하고 극력 원조하나 朝鮮人 사업에는 추호도 동정치 안이 한다. 또 인민에 대하야는 言必稱 近來 人心이 악화되야 官尊民卑를 모른다고 痛論한다. 이것이 白晝에 안저서 무슨 잠고대인가. 그래도 직무상에는 퍽 충실한 사람이다. 전일 세무 관리로 잇슬 시대에 자기의 從兄까지 납세 안이 한다고 때리고 밧엇고 卽今도 官物이면 신중이 알어 邑誌가튼 것도 남을 잘 빌녀주지도 안코 郡勢 一班은 인쇄비 들갑아 맹기지도 안엇다. 참 君은 금세에 난득할 良太守다.<139>
3. 1947년 신문 용례: 해방 이후에도 토왜의 범위를 논의하면서 일제 시대 고등관 이상 중 악질적인 군수 등만을 가리켰다.
1948년 9월 7일 제헌국회는 국권 강탈에 적극 협력한 자, 일제 치하 독립운동가나 가족을 악의로 살상·박해한 자 등을 처벌하는 목적으로 반민족행위 처벌법을 만들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反民族行爲特別調査委員會)를 조직하게 했다. 반민 특위가 조사한 악질적 친일파(토왜) 1차 명단 7,000명 중 검찰에 송치된 자는 559건이었다. 후대에 이들에 대한 조사 후 친일인명사전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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