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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타종교와 기독교

기독교인 정치가가 불교 사찰에 가서 예를 표하는 행위

기독교인 정치가가 불교 사찰에 가서 예를 표하는 행위

3월 14일 자한당 황 대표가 조계종 총무원장을 예방하고 (불교식 인사인 합장 대신) 허리 숙여 인사한 후 악수례를 하고, 대웅전 참배를 하면서 서서 절(반배)하자 먼저 불교계에서 예의가 부족했다고 비판했다. 한 불교 매체는 “종교의 자유가 있는 만큼 개인적인 신앙이야 얼마든지 자유롭게 갖고 피력할 수 있지만, 국민의 민복인 공인으로서 이웃 종교의 성지에 와서는 당연히 그 예법을 따라야 하는 데도 개인의 종교적 신념 만을 고집스럽게 고수했다.”고 보도했다. 승려들이 “로마에 왔으면 로마 법을 따라야 한다.”고 대웅전 참배를 '강요'했다는 소문도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닐 것이다. 

반면 이 문제로 배타적인 보수 개신교인들도 잔뜩 뿔이 났다. 대웅전에서 세 번의 참배 대신 세 번의 반배(半拜)로 예만 표함으로써 "자기의 신앙 소신을 지켰다."고 보는 것보다 권력 욕에 눈이 멀어 우상숭배를 했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화를 내면 근본주의자이다."라는 공식이 맞는 듯하다. 조계종 본사에 가서 반배한 것이 권력욕 때문에 한 우상숭배일까?

정치가의 의례 문제는 신학과 정치가 맞물려 있어 복잡한 사안이다. 기독교인 개인이던 당 대표이던 대웅전에서 반배하는 것이 우상숭배인가? 아마도 고신 측이나 합동 측, 황 대표 소속인 침례교회 등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듯하다.

나는 황 전도사 지지자는 아니다. 그래도 당 대표가 다종교 사회인 한국의 대표적인 종교 단체를 방문할 때 그 정도의 존경의 예는 표할 수 있다고 본다. 어떤 사안을 볼 때 교리적으로, 신학적으로, 정치적으로도 볼 수 있지만, 나는 역사적 사례로 본다. 사례를 보자.

1. 올해 삼일운동 100주년 때 천도교, 불교와 함께 종교 연합 운동한 것을 자랑한 것이 아직 한 달이 지나지 않았는데, 그들은 벌써 이를 까마득하게 잊은 모양이다. 민족을 위한 정치 운동이다. 이게 다른 일일까? 근본주의자라면 타종교인과 어떤 일을 함께 할 수 없다. 만일 지금 어떤 개신교인이 불교 측이나 천도교 측의 돈을 받아서 민족 운동이나 사회 운동 자금으로 사용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2. 초기 선교사들은 가까운 북한산성에 있는 대찰 중흥사에 가서 방을 빌려 아이를 낳곤 했다. 일부 백인 아이들이 풍토병에 약해 그런 깨끗한 사찰에서 태어났다. 절에서는 hospitality를 베풀었다. 절 밥을 먹었다. 함께 대화하며 지냈다.

3. 초기 선교사들은 여름 피서로 중흥사나 다른 절에 가서 안식을 취했다. 특히 성공회는 중흥사를 아예 여름 피정지로 일부 공간을 전세를 내서 사용했다. https://koreanchristianity.tistory.com/286

4. 1910년 YMCA는 서울 근교 사찰인 진관사에서 1주일 간 여름 수련회를 했다. 스님들과 함께 기거하면서 절을 빌려 기도회, 성경공부 등을 했다. https://koreanchristianity.tistory.com/149

5. 1929년 11월 남감리회는 서울 교역자 수련회를 서울 도선암 암자에서 개최했다. 위의 네 가지 사례로 미루어 보면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https://koreanchristianity.tistory.com/284

6.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은 합동 측 장로였고 보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어서 조계사를 방문해도 합장하거나 절을 하지 않았다. 불국사를 방문했을 때도 대웅전에서 역시 부동 자세를 유지했다.

7. 2007년 8월 21일 이명박 후보조계사 총무원장실을 방문할 때 합장을 하며 지관 총무원장에게 인사했다. 이 장로는 대웅전에서 예불하고 신도들에게 합장 인사했다. 당시 예불 장면은 보도금지를 걸어놓고 했는데.... 그것에 비하면 황 대표는 원만했다.
8. 2016년 1월 17일에 발생한 경북 김천의 개운사 불상 훼손 사건에 대해, 서울기독대 신학과 손원영 교수가 사과하고 "광신도를 양산시킨 기독교 근본주의가 (이웃 종교를 공격하는 것을) 신에 대한 충성과 영광으로 오인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법당 회복을 위한 모금 운동을 했다. 서울기독대학교 교단인 '그리스도의교회협의회'와 '서울기독대학교 총동문회'가 대학 측에 공문을 보내 손 교수에 대한 신앙 조사를 요구했다. 이강평 서울기독대 총장은 12월 19일 이사회에서 "(손 교수가) 기독교에서 금기시하는 우상숭배 행위에 해당하는 불상 재건을 위한 모금을 했고, 이 일로 학생 모집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며 징계를 요청했고 이사회는 2017년 2월 16일 손 교수 파면시켰다. 아직 파면 상태는 유지되고 있다. 종교 간 갈등과 대립 대신 대화와 평화를 위한 그의 노력에 대해서 아직도 근본주의적인 학교나 교단의 태도가 완강하다. 참 무례한 기독교 교단이다.

9. 십자가나 불상은 근본적으로 물건이다. (물론 예배당이나 법당에 있으면 구별된 것이다.) 불상을 숭배하는 자도 있고(민간 불교 신앙), 예술품으로 소장하는 수집가도 있고, 완성된 인간성이나 불성의 상징으로 보는 승려도 있다. 돈이나 권력이나 온갖 잡신에 절하는 것보다 그냥 말 없이 있는 한 조각 상에 내 모든 욕망을 담아 던지며 절하는(나의 소아와 욕망을 부정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강남 50평 아파트에 절하거나, 대형교회 부목사직에 절하며 침묵하는 것보다 차라리 절에 가서 부처상 앞에 절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의 제1계명과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제2계명 중 어느 것이 먼저인가?  제1계명이 우선이다. 제1계명에 준해서 다른 신으로서의 우상을 새기지 말라는 뜻이다. 모든 조각을 부정한다면 가톨릭에 있는 여러 성인 상은 무엇이며, 개신교에 있는 루터나 칼빈 상은 무엇인가? 십자가상은 왜 걸어놓는가? 황 대표의 반배를 우상숭배로 규정하는 자는 그 불상을 신으로 보는 자이다.

원래 불교에는 신이라는 게 없다. 석가모니는 불가지론에 가까웠다. 윤회도 후대의 가르침인 방편의 일부였다. 일반 민간 신앙에서는 부처가 신이요, 기도의 대상이지만, 본래는 예배나 기도의 대상이 아니다. 그 상 앞에서 절하는 것이 혹자는 신으로서 예배하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10. 예를 표한다. 절한다는 것이 기독교의 예배와 다르다. 살아 있는 분에게 하면 존경이다. 죽은 자의 위패나 무덤에 절하면 우상숭배인가? 이 문제가 유교의 제사 문제, 신사참배 문제까지 다 연결되어 있다. 본래 유교 제사는 예배(worship)가 아니라 숭경(veneration)과 추모였다. 그래서 개신교 추도회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민간 신앙으로 타락하면 예배가 되고 죽은 자에게 기도가 들어간다. 도산서원에 있는 사당에 가서 절하며 예를 표하는 게 우상숭배인가? 현충사에 가서 향을 피우고 묵념하며 절하는 게 우상숭배인가? 

11. 그러나 일본의 신도는 처음부터 종교로 이해되었다. 더욱이 1938-45년 전쟁 중 국가 신도 신사에 강제 참배하게 한 것은 종교 행위가 포함된 참배였다. 정치와 종교가 혼합되어 있었다. 종교 행위가 아니라고 강변하고 절한 이들이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은 동방요배, 신사참배에서 끝나지 않고, 전쟁 지원에 적극 나섰으며, 성경과 찬송가를 훼손하고, 한강이나 부산송도 등에서 일본 천조대신의 이름으로 ‘미소기바라이’라는 신도 침례를 받았다. 신도 침례는 천조대신보다 더 높은 신은 없다고 고백한 자에게 베풀어졌고, 한국 목회자들은 "천조대신이 높으냐, 여호와 하나님이 높으냐?" 혹은 "일본 천황이 높으나 하나님이 높으냐?"라는 질문에 천조대신과 천황이 더 높다고 고백하거나 그런 문건에 서명했다. 이런 전체적인 맥락에서 신사참배를 이해해야 한다.  

황 대표 조계사 반배 문제를 단순히 우상숭배로 볼 수 없다는 말을 하려다 글이 길어졌다. 한국은 기독교 국가가 아니다. 기독교는 소수 종교이다. 오늘은 이 정도로 정리하자. 내 생각이 모자란 부분도 있겠다. 가르침을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