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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1910s

1919 미주 한인이 읽은 책과 LA 서점

<신한민보>, 1919년 7월 17일자 광고

로샌젤레스 다운타운에서 멀지 않은 138 North Figueroa Street에 있던 태백서관(太白書館)의 광고에 나오는 판매 서적이다. 아마 LA 지역 첫 서점이었을 것이다. 옆으로 길게 나간 광고라 읽기 쉽게 반으로 잘라 실었다. [ ] 안은 이후 몇 개 광고에 나오는 책들이다.

1. 베스트셀러들은 기독교 서적: 성경, 찬송, 창가집, 기독교 청년, [구약사기], [루터개교기략]

2. 과학서적: 신편 동물학, 식물학, [지구의 과거와 장래]

3. 실용서: 실용상법부기학, 자조론, 한국요리 만드는 법, 한영회화 독학, [가정보감], [초학국문]

4. 위인전: 위인원요. 위인 링컨

5. 영문서: H. G. Allen, Korea Facts and Fancy

6. 소설: 수호지, 옥루몽, 무정(이광수), 불상한동무(A Dog of Fanders, 최남선 역)

무궁화, 강상월, 비파성, 백년한, 만인계, 심청전, 흥부전, 전우치전, 별주부전,

저마무전, 양산백전, 사씨남정기, 박문수전, 추풍감별곡, [포은집], [홍경래실기], [금지환],

[목단봉], [금국화], [삼절기], [원양의 상사], [김진옥전], [소한림전], [관운장실기],

[이태백실기], [이호운전], [조용전], [이태봉전], [백학선전], [쌍옥적], [금강문] 등

7. 잡지: <청춘> : 한국 서울의 YMCA가 발행하던 잡지.

소설에서는 이광수와 최남선의 책이 단연 1위. 최남선은 1910년 <레미제라블> 도 <너 참 불상타>로 번역했는데, 1912년 <플란더즈의 개>도 <불상한 동무>로 번역했다. 망한 나라를 생각하여 불상하다는 말을 사용한 듯.

이광수의 <무정>은 1918년에 나왔으니 1원 20전이라도 <불상한 동무>와 함께 LA에서도 많이 읽혔을 것이다.

<무궁화>(1918)는 이하몽이 매일신보에 연재했던 소설인데, 이 광고에는 저자가 이상협으로 나온다. 하몽은 그의 호로, 매일신보 기자를 거쳐 편집장이 되었다. 소설과 기사로 필명을 얻었다. 3.1운동에 충격을 받아 친일지 매일신보에서 나와 동아일보 창간에 참여했다.

<수호지>가 동양의 아라비안나이트로 소개되어 있다. 생각보다 조선시대 소설이 많이 읽히고 있다. 영웅담이나 전기가 많은 것은 1905-10년대 한국에서 항일 독립을 위해 영웅전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둘이 만나 1910년대 LA에서도 영웅전이 많이 읽혔다. 한인들은 이런 소설들을 읽으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지금도 코리어타운의 한인은 한국 TV 드라마, 영화, K-pop으로 정체성을 유지하듯이, 백 년 전에는 한글 소설을 읽고, 창가를 부르며 한국 문화를 지키려고 했다.

실용서에 있는 <자조론> (1918)은 Samuel Smiles의 Self-Help(1859)를 최남선이 번역한 것으로, 19세기 후반 전 세계 베스트셀러였는데, 한국에서는 뒤늦게 번역되었다. 이 책으로 일본은 문명개화로 나섰다. 개신교가 채택한 자급, 자전, 자치의 3자 정책(네비어스 방법)과도 무관하지 않은 책이다. 지금은 처세술, 지혜서, 자기계발서 코너에 들어가 있다. (2005년 공병호 번역으로 새로 나왔다.)

아무튼 최남선이 일본어에서 번역한 <자조론>이나 이광수의 <무정>, 이상협의 <무궁화>는 그 내용과 상관없이 일본어에서 온 번역어나 번역어투의 말이 많았으므로, 캘리포니아 한인들도 이런 소설들을 읽으면서 변하는 한국어를 배웠을 것이다.

지금도 그 원본이 있다면 가장 비싼 책은 <한국요리 만드는 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