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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 교수의 글 /일반 단상, 광고

공부하는 이들에게

젊은 학인에게 1
20대: 기초에 투자하라. (어학 + 독서 + 친구)


30대: 정진하라. 하루에 10시간 이상 공부하고, 두 페이지 이상 쓰라.


40대 초반: 야망 제거 -- 내실을 기하라.

40대 후반: 비겁 배제 -- 초심을 견지하라.


50대 초반: 뱃살 제거 -- 욕심을 멀리하라. 

50대 후반: 타성 깨기 -- 다른 분야 책도 읽으라. 


60대 초반-- 아직도 젊으니, 명예욕을 제하라! 

                     밖으로 아첨을 멀리하고 안으로 초초함을 제거하라.



젊은 학인에게 2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박사논문과 이후 어느 정도까지는 지도교수의 견해를 수용하고 이후엔 자기 학설을 세우고 자기 목소리를 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1) 지도교수가 계속 열심히 연구하여 양질의 책과 논문을 생산하면서 후학들에게 합리적인 태도를 보이는 좋은 학자라면 그를 배우고 따라가고 존경하는 태도로 협력하는 것이 학문면이나 의리면에서 당연하다. 그러나  


2) 그가 어떤 시점부터 그가 비판했던 선배들보다 더 권위적이고 제대로 연구도 안 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언제까지 한 때 ‘대가’였던 교수의 말에 한 마디 비판도 못하고 그의 썰을 확립하는데 충성하고 그것을 재탕하고 풀어먹고 살 것인가?  


3) 한국의 경우 교수가 관료나 학교 행정가나 유명 강사로 가는 경우가 많아 학자의 생명이 짧다. 또 한국에서 학자가 학자로서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허약한 기초, 연구와 출판 환경 열악, 쉽게 유명하게 되고 ...그 유명세로 ‘잡일’ 사역에 시간 낭비, 세계 학문의 급속 발전 등 이해 받을 만한 이유가 많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박사과정, 강사, 조교수 과정에 있는 미래의 대가들이여! 분발하라! 자기 학설과 이론을 세우라! 자기 신학을 하라. “일할 수 없는 밤이 속히 오리라.”


젊은 학자들에게 3

“學而時習之不亦說乎”

‘時’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1) 배우고 배운 것을 때때로(occasionally) 익히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다산 정약용) 

(2) 배우고 배운 것을 때에 맞게(timely) 익히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율곡 이이). 


좀 더 글자 풀이를 하면 學은 아이가 음식을 입에 넣어 턱과 이빨로 꼭꼭 씹는 모습으로 선생이나 책이 가르쳐 주는 영양가 있는 지식과 지혜를 열심히 받아 들여 소화하는 모습이다. 習이란 어린 새가 날개 짓을 열심히 해서 나는 모습(체화)이다. 悅이란 지식을 깨달았을 때 오는 내면적 희열이다. 배운 것을 때에 맞게 실천할 때 깨달음의 희열이 온다. 20대부터 죽을 때까지 필요한 자세이다.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그런 희열을 아는 朋(벗)이 비록 가난한 동네에 살지만 동지로서 함께... 만나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여기서 樂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즐거움이다. 주로 30~40대의 모습이다.


人不知不穩 不易君子乎.” 세상이 몰라주어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을 때 참 지식인이 된다. 지식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남을 위한 것(爲人之學)이 아니라, 내 인격을 완성하기 위한 나를 위한 것(爲己之學)이다. 이름이 나지 않는다고 얼굴을 붉히면 아직 군자가 아니다. 이름을 내려고 얼굴을 팔면 벗도 아니다. 그런 자는 悅도 樂도 없기에 세상이 알아주기를 원한다. 주로 40~50대가 새길 말이다.

옥성득

 #옥성득의 한국기독교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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