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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승만

1960년 4월 26일 이승만 하야

1960년 4월 26일 아침 10시 30분 이승만 대통령 사퇴 담화
아침 일찍 비서에게 하야 성명서를 타이핑하게 했다. 마음을 정리했다. 이어 10시 경 간단한 감사의 편지 두 장을 비서에게 담담히 불러주면서 타이핑하게 한 후, 사퇴 담화 발표장에 나갔다. 

4월 22일까지 그는 4.19 이후 시위의 발전에 대해 잘 보고받지 못하고 있었다. 23일부터 사태를 파악하고 24일에는 자유당 총재직을 사임했으며, 26일 아침 탱크가 경무대를 지키고 대형 참사가 일어나기 직전 미국 대사 등이 이승만을 만나 유혈사태가 임박한 것을 알리고 이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했다. 

그는 사태를 파악하고 준비한 사퇴 성명서를 읽었다. 그는 민주주의를 위해 들고 일어선 청년들을 보며 대한민국의 희망을 보았다. 그것은 사실 그가 20대였던 1898년 종로에서 했던 일이었다. 강경 진압을 주장하는 측근들에게 그는

     "불의를 보고 일어나지 못하는 민족은 죽은 민족이다. 인민이 내가 그만둘 것을 원하면 물러나면 된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최소한 민주주의는 국민의 뜻에 따르는 정치임을 알고 있었다.이승만 입장에서 사퇴는 담담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자리에 연연해 하거나 울먹이지 않았다.

이틀 후 이기붕 부부는 아들에게 살해되고 아들 이강석은 자살했다. 이강석으로 이승만 차기를 노리던 욕망의 덩어리 이기붕 일가는 순간에 무너졌다.

1898년-1919년-1945년-1948년-1960년-1987년-2016년 이렇게 한국 정치는 바뀐다. 

다음 자료를 보면 당시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자료 1. Marshall Green  http://adst.org/2013/04/the-fall-of-south-korean-strongman-syngman-rhee-april-26-1960/

 

The Fall of South Korean Strongman Syngman Rhee - April 26,1960 - Association for Diplomatic Studies and Training

Syngman Rhee, a staunch anticommunist and authoritarian, was the first president of South Korea. Backed by the United States, Rhee was appointed head of the Korean government in 1945 before winning the country’s first presidential election in 1950. He led

adst.org

 

자료 2 이승만 하야 담화문 (라디오)

https://www.youtube.com/watch?v=U9JHHgNQJOY

위의 동영상에도 초등학생들이 나온다. "아저씨들 부모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말라!"
1961년에 바로 혁명으로 정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