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를 넘긴 1899년 톨스토이는 다가오는 세계 열강의 제국주의 시대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마지막 대작인《부활》 연재에 들어갔다.
1895년 까프까즈 지방에 ‘두호보르’ 박해 사건이 일어나 천 여 명의 교도가 살해되었다. ‘두호보르’ (Doukhobors = 영혼을 위해 싸우는 자)는 18세기 중엽부터 러시아정교에 발생한 한 종파로서 원시 기독교의 교의를 엄수하고, 철저한 무저항주의 無抵抗主義와 사해동포주의四海同胞主義를 실행하는 한편, 신의 왕국만을 인정하며 국가, 법률, 병역의무 등 지상의 온갖 권위와 법규를 부정하는 종교 집단이었다.
그들의 신념은 톨스토이의 사상--비폭력, 반국가, 반제도 평화주의--과 일치했다. 박해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변하지 않자 정부는 국외 추방을 명했으나, 그들은 캐나다까지의 여행비가 없었으므로 톨스토이는 이들을 도와주기 위해 《부활》연재를 시작했다.
《부활》은 네흘류도프 공작과 창녀 까츄샤를 통해 부패한 제정 러시아에 대한 비판서를 너머 당대 세계 문명과 제도와 권위에 대한 준엄한 비판서요, 기독교 정신을 떠나 위선과 부정과 불평등을 조장하는 정교회에 대한 파문서이며, 인간 생활의 죄악에 대한 무서운 사형 선고서였다.
특히 평화주의자 톨스토이는 ‘문명의 보급’이라는 미명하에 행해진 일본의 러일전쟁과 한국 강탈 행위는 도덕적 정당성이 없다고 단언하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타락한 무도無道의 인간’이라고 비판했다.
* 오늘날 캐나다에 거주하는 두호보르파는 19세기 말 러시아 제국의 박해를 피해 이민한 두호보르파 기독교인들의 자손들로 약 4,000명이 존재한다. 약 3만 명은 러시아와 다른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엘리트들은 사회진화론을 수용한 후 그 일본 역인 동아주의(Pan-Asianism)를 수용하고 일본이 서구 제국주의의 한 세력인 러시아를 물리치는 것을 지지하고, 일본의 도움으로 대한제국이 근대화될 줄 착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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