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3월의 두 사건: 장인환의 스티븐슨 저격과 최병헌 목사의 선유사 활동
여러 가지를 종합 검토할 사안이나, 일단 캘리포니아에 있던 한인들의 입장은 분명했다.
선유사 활동을 한 서상륜, 최병헌 등을 강하게 비판했다.
1908년 3월 선유사 유세 기간인 24일 (한국 시간 25일)에 샌프란시스코에 스티븐슨(Durham White Stevens, 1851-1908. 3. 24)이 도착했을 때, 의병장 이인용이 재외 한인에게 보낸 격문(The Holy War Manifesto)이 함께 도착했다. 그 내용은 "동포들이여, 우리는 일치단결해서 조국에 우리를 바치고 독립을 되찾아야 한다. 그대들은 야만스러운 일본인들의 만행을 세계만방에 고해야한다'는 호소에 이어 "일본인들, 그 첩자들, 동조자들, 야만적인 일본 군인들을 모조리 처형하라"는 결론을 담았다.
이를 읽은 한인들은 감동을 받았고, 스티븐슨의 친일 행동에 분노했다. 그 결과 장인환이 그를 저격했다.
이때 미국의 신문들은 저격 사건과 함께 한국 의병장 이인용의 격문을 번역하여 실었다. 단순한 울분에서 한 행동이 아니라, 의병장 이인용의 지시와 사전 치밀한 모의에 의해 사건이 일어난 항일 전쟁의 일부로 보도했다.
두 사건을 비교하면 일본군의 호위를 받으며 선유 활동을 한 최 목사의 행적이 초라해 진다. 그 분위기에서 양주삼이 <신한민보>에 선유사 비판 기사를 실었다.
반의병 선유사: 서상륜, 최병헌, (길선주는 나서지 않았다)
캘리포니아 한인: 장인환 (스티븐슨 저격). 양주삼 (교회 비판)
미국 외교관: 스틴븐슨 (친일)
미국 선교사: 헐버트 (항일)
옥성득, <한반도 대부흥> (2009), 87
다음은 고종이 의병에게 내린 조칙과 최병헌 목사의 선유문이다.
조칙(詔勅)
조(詔)에서 이르기를, 오호(嗚呼)라! 지금 이 지방의 어지러움이 마침내 편안치 않으니, 이것이 어찌 우리 백성(赤子)이 편벽되게 난(亂)을 좋아하고 화(禍)를 즐겨 한쪽으로 치우치는 마음이 있어서 전란(戰亂)(鋒鏑)의 우환을 달게 입겠다고 했겠는가?
우매하고 잘못된 것을 지나치지 않고 바로잡아서 전도(顚倒)된 것의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자는 것이니, 어찌 본래의 그 마음에 일찍이 책망할 죄가 있겠는가! 그 허물은 본디 교육을 받지 못한 데 있으니, 그 어리석음을 따져 책임을 묻는 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기어가서 우물에 빠짐을 책망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앉아서 바라만 보고 구하지는 않고, 다시금 더 다가가서 아이를 밀쳐서 떨어뜨리겠는가? 하물며 날씨는 춥고 한 해는 저물며, 빙설(氷雪)에 연이어 넘어지고, 또한 그 부모는 문에 기대어(倚閭) 소리 없이 울고, 처자는 배고파서 울며 기다리는구나. 눈에 띄이는 것마다 모두 처참함 일이(滿目愁慘) 모두가 곳곳에서 이러하니 백성과 부모를 위하여 여기에 이르러 생각하니 어찌 측은히 여겨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제 이후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고한 자는 법에 따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혹 그가 전의 잘못을 깨달아 뉘우치고 성심(聖心)으로 돌아와 순응하되 그 뜻이 명확하고 의심이 가지 않는 자에게는 이전의 죄를 묻지 않을 것이다. 이에 지방 관헌으로 하여금 감시보호하에 있게 하고 면죄의 증빙문서(文憑)를 주고, 편안히 생업을 즐기며 살게 할 것이다. 흉악한 무리(龍蛇)도 변화시켜서 나의 백성이 됨이 가하니, 일을 맡은 모든 신하는 묻지 말고, 짐이 몸소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스리는 것이니 널리 펴서 시행하라.
융희 원년(1907년) 12월 13일
효유문(曉諭文)
아아, 슬프도다! 오직 우리 동포여!
국가의 형편이 험하여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해 있고, 민생은 곤고하여 병들었으며 도탄(塗炭)이 극에 달하였다. 불에 타서 없어진 시골마을은 처처에 거친 먼지투성이요, 흩어진 형제들이 종종 해를 당한 것이 눈앞에서 넘쳐나서 그 처참함이 극에 달하고 처량하게 되었다. 오로지 나는 황상 폐하의 특명 선사(宣使)로 보냄을 받아 달래고 깨닫도록 일러주는데도 무기를 지니고 깃발을 든 무리들이 끝내 귀순하지 않으니 이들을 어찌 의로운 무리라 하겠는가! 황명을 거역하는 것을 충(忠)이라 할 수 없고, 아비의 뜻을 순종하지 않는 것을 효라고 하기에 어려우니 신하가 되고 자식이 됨에 불충불효이면 의(義)라고 하는 한 글자(一字)는 실로 거짓 칭함(冒稱)이 되는 것이다.
성(聖) 천자(天子)(황제)의 인애의 덕과 자비의 은혜로서 차마 위엄을 가하지 않으시고, 재차 본인(本職)에게 특별히 하명하시어 은혜로 다스리셨다. 그 명령을 받은 날에 온갖 감회가 교차하고 만 가지 마음이 얽혀서 우울하여 스스로 가생(賈生)의 통곡과 원안(袁安)의 흐르는 눈물을 금할 수가 없었다.
아, 슬프다! 우리 동포여! 재삼 그것을 생각하라! 자고로 혁명하는 선비들과 나라를 일으키려는 무리들은 먼저 교육에 힘써 재주와 국량(局量)을 배양한 후에 그 역량(力量)을 행하며 상대를 알고 난 후에 싸워야 불세위업(不世偉業)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의 의거(仗義)는 비록 남의 굴레를 벗어나고 우리의 국권을 찾으려는 것이지만 무턱대고 위험을 무릅쓰고 덤비다가 이루지 못한 것은 마땅한 일이다.
「군략」(軍略)에 이르기를, 군사는 복습(服習)하며 기용(器用)하는 것이 이롭다 하였거늘, 소집된 병졸들은 불과 산 속의 사냥꾼이나 시골(田間)의 백정(白丁)으로 백성에게 해로움이나 끼치고 있으며, 대오(隊伍)를 이루지도 못하고 진퇴를 익히지도 못하여 까마귀 떼를 모아놓은 것 같아서 흙이 무너지듯 흩어지고 있으니, 반드시 패하는 그 첫째 이유이다.
소지하고 있는 무기는 화승구총(火繩舊銃)과 목봉(木棒)과 무딘 칼에 불과한데, 저쪽의 적(敵)은 신식 총, 기관포(機關砲)이다 보니, 반드시 패하는 둘째 이유이다.
소지하고 있는 양식은 불과 요민(饒民)에게 구실을 붙여 거두어들인 것과 잔호(殘戶)의 두곡(斗穀) 뿐이고, 원망하는 소리와 와전된 소문으로 오래 버티기가 힘드니, 이것이 반드시 패하는 세 번째 이유이다.
세 사람이나 다섯 사람씩 무리를 이룬 자들이 의병의 이름을 거짓 핑계(假託)하여 백성의 재물을 약탈하고 촌락을 불태워서 동포에게 원한을 품게 하니, 반드시 패하는 네 번째 이유이다.
완고하고 우매한, 패할 수밖에 없는 세력으로 정예의 군사에게 항거하고자 하니, 이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다름이 아니며 양을 몰아서 호랑이를 공격함과 같은 것이다. 섶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자는 스스로 멸망을 취하는 것이요, 돌이켜 조국을 해하는 일이지만 오히려 귀순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위로는 군주의 근심을 더하게 하는 것이요, 아래로는 백성들에게 괴로움을 끼치는 일이니 차라리 슬퍼해야 할 일이 아닌가!
젊고 아름다운 얼굴의 청상과부는 지아비를 곡하고 눈물을 흘리니 연약한 마음이 끊어질 듯하며, 흰머리의 늙은 아비는 문 밖에 기대어 자식을 기다리고 있으니 눈이 어두워져 뚫어질 지경이라. 긴 밤 외로운 등불에 무릎 아래 잠자던 아기는 소리쳐 울어대고, 계집아이는 눈물 흘려 슬피 울며 말하기를 “아버지는 어디에 무사히 계신가요? 어디 가셨는지 돌아오지 않으세요?”어미는 눈물을 머금으며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위로가 되고 있다. 좋은 말로 굳이 타이르기를 “울지 말고 편안하게 자거라! 아버지가 돌아오실 때에는 반드시 엿과 밤을 사가지고 오실 것이다.”하고 있으나, 마음은 쇠나 돌이 아니니 어떻게 그것을 견딜 것인가?
추운 겨울 누추한 집에 과부로 지내는 홀어미가 근심(搔首)하며 집을 나서니 낡아빠진 옷과 치마는 누덕누덕 기워 입은 해진 옷이다. 집안 살림살이를 돌아보니 단지에는 좁쌀마저 쌓아놓은 것이 없고, 부엌에는 땔감 한 단도 없으니 불을 지펴 연기 나는 것도 여러 차례 끊어졌다.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여 말하기를 “아득한 푸른 하늘이여 사랑하는 자식이 평상시에 아비를 위해 쌀을 지고, 나를 위해 땔나무를 하더니, 불행하게도 의(義)의 무리는, 실로 나의 원수로다!”지금 어느 곳에 있어 죽지도 못하고 풍찬노숙(風餐露宿)에 병든 곳이 없어도 곡하며 울부짖으니 푸른 하늘도 말이 없구나! 사람은 짐승이 아니니 능히 슬퍼하지 않으리오!
아아, 우리 동포여! 미망(迷妄)에 사로잡혀 돌아서지 않는다면 단호히 다시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 반드시 하늘의 꾸짖음이 있을 것이다.
창이 숲을 이룬 대포의 연기 속에서 만약 칼날 끝의 혼(魂)이 되지 않으면, 얼어붙은 바다나 눈 쌓인 구덩이 속에서 얼어 굶어 죽는 귀신을 면하기 어렵도다. 빈숲에 밤비가 내리고 처량하게 울어대는 혼령과 묵은 풀과 거친 들에 쌓여가는 우리 동포 뼈들은 우리 동포들이 싸우다 죽으며 남긴 부르짖음이 아니라고 할 수 없도다. 뉘우침이 어디에 이르렀는가?
본인이 칙서를 받은 날에 죄를 면죄해 주는 증빙문서도 겸하여 받았으니 이 문서는 폭도가 아니라는 것을 증빙하는 법상(法相)의 도장이 찍힌 것이라. 주차(駐箚) 사령부의 도장을 찍은 것이어서 그 신중하고 명백한 칙서의 증명이 마치 금석과 같이 견고한 것이다. 만약 귀순자가 이 증빙문서를 가지고 있으면 국내 국외의 관헌을 막론하고 침범할 폐단이 없는 자라는 것을 판단할 것이요, 또한 귀순자는 비록 지난 날 매우 악한 일을 했더라도, 일체의 잘못을 씻어버림으로 이 증빙문서를 받게 되는 것이다.
황황(煌煌)히 조칙에 말씀하기를, 성심으로 귀순하는 자는 특별히 면죄의 증빙문서를 주라 하셨으니, 임금의 지존하신 성덕(聖德)을 어찌 다시 말할 이유가 있겠는가! 바라건대, 돌이켜 잘못을 깨닫고 명을 받들어 귀순하시라! 이것이 실로 임금께 충성하는 자의 대의(大義)요, 나라를 사랑하는 자의 대의이며, 그 부모를 공경하고, 이 땅의 생민(生民)을 사랑하는 자의 대의니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편안히 살면서 생업을 즐기며 자신의 실력을 길러 단체를 만들 것이니라. 그리고 뜻있는 사람과 때에 따라 용감한 사람들이 무리지어(濟濟) 일어나서 장수(長袖) 무대에서 다시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나라가 부강한 날이 되어야 백성이 태평한 즐거움이 있으리니, 모름지기 모두 깨달아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날이 이르지 않도록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니라.
융희 2년(1908년) 1월 일(무신 정월 일)
----- 『충청남도 선유문안』(忠淸南道宣諭文案) (1), <기독교사상>, 2017년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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