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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 교수의 글 /이런 게 인생

[이런 게 인생] 미국에서 박사 지원

아내와 나는 어린 아이 셋을 데리고 유학을 왔다. 영어부터 모든 게 쉽지 않았다. 나는 미국 신학교 시스템이나 박사 지원 과정을 잘 몰랐다. 1993년 나이 서른 넷에 세운상가 조립 286 컴퓨터를 이민 가방에 들고 와서 프린스턴신학교에서 신학석사 과정을 시작하면서, 한국기독교사 전공으로 어디서 공부해야 할지, 교회사나 선교학 중 어디서 박사과정을 밟아야 할지 몰랐다. 내 전공으로 공부한 가까운 선배도 없었고 충고해 줄 만한 이들도 없었다. 

교회사이고 미국교회사와 연관이 많으니 그쪽으로 가야 하는가보다 해서 첫 학기에 미국교회사, 초대교회사, 종교개혁사, 한미 이민신학 네 과목을 들었다. 미국에서 첫 학기라 인생에서 가장 힘든 때였지만, 다행히 올 에이를 받았다. 1월까지 지원해야 하므로 첫 학기 성적이 중요했다. (참고, 한국기독교역사로 미국에서 박사를 하려면, 미국에서 한국학 석사나 신학 교회사 전공 신학석사를 하고 영어로 논문을 쓰는 게 좋다. 미국에서 수업 듣고 박사논문 쓸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단 1.5세나 2세로서 아이비리그 학부 역사 전공 우수자로 한국어에 능하다면 바로 박사과정에 지원할 수 있다.) 

2학기에는 미국교회사 2, 비교종교학(선교학), 근대교회사, 이민교회 교육을 들었다. 프린스턴 한인교회에서 목회하는 대학교 선배가 Th. M.을 하면서 선교학 교수와 사이가 안 좋았고 그래서 선교학을 듣지 말라고 충고해 주었는데, 막상 비교종교학을 들으니 편견 때문이었는지, 별로 공부할 맘이 생기지 않았고 역사와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 해에 선교역사 교수가 없었다.] 그래서 미국교회사 교수를 찾아가서 박사과정을 문의했다. 내가 한국교회사에 관심이 있는 것을 알고 그는 말을 빙빙 돌렸다. 미국 교회사 교수이므로 당연히 미국 교회사 전공자를 원했다. 나는 공중에 붕 떴다. 내가 갈 학교나 지도교수가 보이지 않았다. 신학교에서 한국교회사 박사 과정으로 지도해 줄 교수가 어디 있는가?

나는 도서관에서 연구하며 책을 집필 중인 마페트(마삼락) 박사를 찾아갔다. 내 사정을 듣더니 보스턴대학교 신대원에 Dana Robert 교수가 예일대학교 출신 후배인데 좋다고 하면서 지원해 보라고 했다. 그리고 “역사 공부 힘들지만 재미 있어요!”하면서 나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 주었다. 나는 잘 몰랐고 생각지도 않았던 학교에 성적과 논문 한 개를 보내며 지원했다.

사실 딱히 지원할 데도 없었고, 아는 데도 없었다. 그런데 그 학교에서 전액 장학금+ 생활비를 주겠다는 편지가 왔다. 할렐루야!

갈 길도 출구도 보이지 않았는데, 북쪽에서 문이 크게 열렸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지만 BU School of Theology의 데이나는 새로 부상하는 "세계 기독교" 분야에서 떠오르는 스타 소장 학자였다. 라토렛(백낙준 박사의 은사) 이후 예일 선교학파의 마지막 주자이자 세계기독교학파를 연 학자였다. 7년 간 공부하는 동안 그녀는 정상급 교수로 성장했고, 나도 그 덕에 이후 길이 열리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최선의 장소에 나를 보내어 주신 것이다.

마페트 박사와 로버트 교수는 내 미국 유학의 은인이요 은사이시다. 한 분은 소천하셨고, 한 분은 같이 늙어 가고 있다. 나는 사람 복이 많고, 특별히 스승 복이 많다.

모든 게 不亦恩惠乎.

Samuel Hugh Moffett                 Dana L. Robe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