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주년이 되는 나의 모 교회, 거제도 하청교회의 초기 역사, 1920-24; <기독신보>, 1924년 10월 8일자
내가 말로만 들었던 고향 교회의 초기 역사를 이렇게 원자료로 보게 된다.
설립자는 신영식(辛令植) 영수. 1920년 경 자택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다가, 1922년 4월에 하청리 중앙에 예배당을 세우고 가족 중심으로 예배를 드렸다. 1924년 하청리 유계리에 외부에서 온 신자인 강재풍 씨가 신학강습회를 열고, 교사 김재석 씨가 함께 하면서 신자가 늘 때, 권탁호(權卓鎬) 씨는 입교하는 날 유계리에 있는 초가 3간을 예배당으로 기부했다.
1926년 5월부터 유계리 예배당 시대가 열렸는데, 장년주일학교와 유년주일학교와 유치원까지 조직하게 되었다.
어릴 때 하청리 중앙에서 배를 타기 위해 부두로 걸어갈 때면, 낮은 산 고개로 유계리로 넘어가는 언덕 사잇길이 있었는데, 그 언덕에 예배당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유계리와 하청리 중앙, 언덕 위에 작은 초가집 예배당, 그것이 하청장로교회의 두 번째 예배당이었다.
하청교회는 네 번 이전한 후 현재 5번 위치에 있다. 1번 부근에 있던 신영식 씨의 가정교회가 2번 유계리 예배당으로 옮긴 후, 1937년 3번에 함석지붕 목조 건물을 지었다. 내가 유치부를 다닌 교회요, 초등학생일 때 4번으로 이전한 후, 나의 부친이 3번 부지를 사서 그곳에 주택을 지어서, 나는 3번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4번에서 5번으로 곧 이전했는데, 그때가 여전히 내 초등학생 시절이었다. 3,4,5번 모두 마루바닥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다. 4번은 고현 포로수용소의 예배당을 헐 때 그 목재를 가지고 와서 그대로 지은 건물이었는데, 미국산 목재였고 오래 사용하지 않은 예배당이었으므로 나무바닥이 좋았다. 5번에서는 콘크리트벽돌 건물을 옆에 지어 본당으로 사용하고, 기존 예배당은 주일학교 용으로 사용하다가, 현재는 콘크리트 예배당은 노인 학교로 사용하고, 과거 목조 건물 자리에 새로 큰 벽돌 건물을 지어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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