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1910s (19) 썸네일형 리스트형 한글의 타락: 일본화와 영어화 한글의 실상: 일본화와 영어화 1910년대에는 일본화, 2010년대에는 영어화 1915년의 한글 대영성서공회가 에 낸 광고, 1915년 12월 7일자이다. 오른쪽 광고문은 한문투가 많은 국한문으로 구세대 독자를 겨냥했고, 왼쪽은 일본어에서 온 '적'(的)이 많은 일본어투로 신세대를 겨냥하고 있다. 광고문은 일상어를 반영하고 시대상을 보여준다. 비록 한글 성경을 광고하는 성서공회의 글이지만, 한문어투와 일본어투 사이에 질식되어 죽어가고 있는 한글의 창백한 민낯, 100년 전 식민지의 실상이다. 2015년의 한글 100년이 지난 오늘 한국 일간지나 잡지에서 광고를 따오면 또 어떨까? 영어와 외래어에 질식되어 창백한 한글을 보게 될 것이다. 오늘(3월28일) 동아일보 전면광고의 일부분이다. 광고 치고 그리 심.. 1910. 3. 26 안중근 순국 3월에 생각나는 사람 토마스 (多默) 안중근 장군 1909. 10. 26 동양평화를 위해 이또 히로부미 하얼빈 역에서 사살 1910. 2. 14 재판정에서 사형 판결 1910. 3. 26 사형 순국 이틀 전에 아내에게 보낸 편지: "우리는 이 이슬과도 같은 허무한 세상에서 하느님의 배려로 배필이 되고, 다시 주님의 명으로 헤어지게 되었소. 그러나 머지않아 주님의 은혜로 천당에서 다시 만날 것이오. 주님의 안배만을 믿고 신앙을 열심히 하고, 모친께 효도를 다 하시오. 두 동생과 화목하며, 자식의 교육에 힘쓰길 바라오. 심신을 편안히 하고, 후세에 영원한 복락을 희망할 뿐이오. 장남 분도를 신부가 되게 하려고 나는 결심하고 믿고 있으니, 그리 알고 하느님께 바치어 장래에 신부가 되게 하시오. 허다한 말은 후.. 목포 일본인 신시가지, 1910년대 [이 사진 한 장] 목포 일본인 신시가지, 1910년대바닷가 언덕에 일본인들을 위해 신사를 설치했다. 직각으로 신작로를 내고 일본인 거주지를 만들었다. 엽서 왼쪽으로 더 나가면 한국인 구 읍이 있고, 그 안에 선교 학교와 병원과 교회가 있었다.모든 식민지 도시는 이렇게 공간이 이분화, 서열화 되었다. 기독교는 민중이 사는 한국인 지역에 위치했다.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