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그리스도인 통계
총독부 통계에 따르면 1937년 말 개신교인-- 224,688명(장로회 162,927명, 감리회 24,793명 , 구세군 14,594명,성공회 8,401명, 안식교회 8,105명, 동양선교회 5,868명 등이었고, 천주교인 149,719명, 정교회 185명. 합계 374,583명으로 개신교인 = 60%, 천주교인 = 40%. 전 인구를 22,000,000명으로 잡으면이었으므로 그리스도인은 인구의 1.7%였다. 이게 일제시대 최대치라고 보면 된다. 장로교회와 천주교회의 경쟁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1896 한국 기독교 통계
Daniel L. Gifford, Everyday Life in Korea (New York: Revell, 18908), Appendix A. 개신교 선교사 101명, 천주교 선교사 34명 청일전쟁 후 1년 동안 개신교에는 217명이 새로 입교했고, 천주교에는 1,250명이 입교했다. 이 추세는 점점 그 간격이 좁혀지다가, 1902년 전후에 역전된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위 표에서 보듯이 의료에 개신교가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성공회를 제외한 개신교 병원은 9개, 진료소 12개에서 455명이 입원 치료를 받았고, 3만 여 명이 외래환자로 치료를 받았다. 교육 선교에서는, 1905년 이후 애국계몽운동 기간에 개신교 학교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