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로회는 1904년 성탄절 전남 광주 양림동에 선교지부를 설치하고, 교회, 남녀 학교, 병원(제중원 -->기독병원), 나환자병원, 성경학교 등을 설립해 나갔다. 현재 교회와 학교는 일부 건물들이 남아 있지만, 제중원 건물은 남아 있지 않다. 1885년에 설립된 서울의 제중원은 1894년 선교병원으로 전환되었다. 이후 평양을 비롯한 여러 장로회 선교지부에 병원을 설립할 때 그 이름을 제중원이라고 했는데 그 뜻은 선교병원이었다. 고유명사가 일반명사로 변해서, 평양 제중원, 전주 제중원, 광주 제중원 등으로 불렸다가 예수병원, 기독병원으로 개칭하게 된다.
최근에 광주 제중원 터를 확인하고 기념석을 세웠다. 아래 지도에서 중앙에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다.
아래 지도에서 14번이 광주기독병원이며, 첫 제중원 터는 현재 8번 오른쪽 병원의 직장어린이집과 직원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1905년 광주와 내륙 개척 전도는 유진 벨(Eugene Bell)과 오웬(Owen) 목사가 맡았고, 의료는 1905년 11월 20일 오후, 놀란(Dr. Joseph. W. Nolan) 의사가 9명의 환자를 진료하며 제중원을 시작했다. 1907년 4월 놀란이 선교사 직을 사임하자 의료선교는 중단되었다. 1908년 윌슨(Robert M. Wilson) 의사가 오면서 다시 제중원이 문을 열었다. 1909년 4월 오웬의 사망으로 목포 선교지부에서 사역하던 프레스톤(Preston)이 5월에 광주로 와서 1940년까지 사역했다. 1911년 윌슨 선교사가 현재 광주기독병원 위치에 현대식 병원 건물을 신축하고 이전했다. 구 제중원 건물은 선교사들의 게스트하우스와 선교사 자녀들의 학교로 사용되었다.
광주 제중원 첫 건물을 보자. 벽돌 건물에 유리창문을 넣고 기와지붕을 얹었다. 당시 1인 의료 선교사 병원은 거의 이런 근대식 단독 건물이었다.
1911년 신축한 광주 제중원 (현 기독병원 자리)
1911년 병원이 옮겨가면서 윌슨 의사는 나환자촌을 만들고 나환자 치료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다. 광주에 형성된 첫 나환자 촌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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