僞善도 그리워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장 가증한 것, 가장 견딜 수 없이 가증한 것은 위선이었다. ... 마는 위선자의 표본으로 지목받던 서기관과 바리새교인들의 언행을 상고하면 저들에게는 차라리 기특한 것이 많았다. 저들은 “말만 하고 행치 않는” 것이 결점이었으나(마 23:3) 그 하는 말은 옳은 말이었으므로, 예수도 자기 제자들에게 "바리새인의 명하는 말은 준행하라“고 가르치셨다(마 23:2). 저희는 헛된 맹세로써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였으나, 맹세란 것이 신성한 것인 줄은 알았던 고로 지시할 물건을 고려하였다. 저희은 “잔과 소반의 거죽은 깨끗이 하되, 그 안은 토색함과 불의함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라고 책망 받았으나, 그래도 깨끗이 할 줄은 알았고 규모는 있는 사람들이었다. 저희는 선지자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의 비를 세움으로 책망 받았으나, 저희 스스로는 의인이 못 되면서라도 의인의 공덕을 인식하는 안목만은 우리 조선 사람들보다 훨씬 나았다. 저희는 범사를 사람에게 보이려는 허영심으로 하였으나, 그래도 善이라는 標準이 있는 백성이었다. 선을 행하지 못할지라도 선을 행할 것이라는 道는 알았고, 이를 두려워할 줄은 알았다.
돌이켜 20세기의 문화를 자랑하는 현대인은 어떠한가? 현대인은 언행의 일치를 기하되 행실뿐 아니라 말까지도 선하지 않음을 귀히 여기며, 위선을 꺼려하는 고로 공연하게 불의를 말하고, 非禮를 행하면 도리어 솔직하고 철저하다는 사회의 찬탄을 받는 세상이다. 현대인은 도의의 근본을 파괴하고 선의 표준의 전복함으로써, 청천백일하에 불의를 감행하여, 위선의 필요성을 없이하였다. 오호라. 이제는 위선도 그리운 세대로다.
(김교신, 193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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