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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김교신

소록도에서 김교신에게 보낸 편지, 1935년

소록도 갱생원 북부교회 맹인구락부 문신활(文信活)이 성서조선 김교신에게 보낸 편지, 1935년

성서조선지가 나병원에서 널리 읽혔음을 알 수 있으며, 당시 한센씨 환자들의 깊은 영성을 알 수 있다.

1. 3월

3월 16일(토) ...편집 조판까지 필한 후에 소록도 통신을 접하다. 이것은 주필의 일생에 가장 큰 사변의 하나이다. 이 일을 지우들께 알리기를 지체할 수 없었다. 반도의 유위한 청년들이 복음을 요구하지 않고, 유리한 전도지를 교권자 제씨가 강하게 독점하고자 할진대 우리는 애석할 것 없이 퇴각하여 소록도의 오천명 친구에게 가리라. 병자라야 의원이 필요하다. 단, 지면의 제한으로 조군의 요한복음이 2면으로 단축된 것은 미안천만. 장도원 목사의 간곡한 권설도 있어서 이번 4월호는 춘풍같은 교회 친화호로 편집하고자 하였으나, 드디어 철저한 반교회가 되고 말았다. 소록도 통신까지 보고야 불노할 이 있을까? 그 동안 오래 쉬었던 성서연구회를 별지 광고대로 4월부터 다시 시작한다. 고보 3학년 생도를 주체로 하고, 일요학교 모양으로, 예수 행적 이야기로부터 기독교의 중심에 들어가고자 한다.

3월 31일(목)..... 오늘 또 소록도에서 아래와 같은 소식이 오다. 나 자신을 위해 또 조선 기독교회를 위해 참회의 눈물과 분노의 폭발을 누를 길이 없었다.

「생명으로 떠남도 만남도 없이 하나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형상을 유형무형으로 닮아 가시는 선생님, 위로 내리시는 은총과 평강을 무한히 넘치게 받아 누리시기를 힘없는 무릎을 끓어 항상 주 예수께 비나이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생명적인 천국 비밀의 진리를 모든 인생 사변과 사물에서 명확하게 취급하시와 영화의 하늘 길을 끊임없이 걸으시는 선생님, 육안으로는 뵈옵지 못하였사오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로 뵈옵고 알고 만진 바 되었나이다. 그러므로 선생님과 소생의 사이의 분리란 육이요, 영은 아니온즌, 비록 선생님은 북으로 소생은 남쪽 소록도에 멀리 있을지라도 복음 안에서 같은 생명을 호흡하는 생명의 결합이 아니겠습니까?

아! 그리스도의 피와 그의 살로 인연이 된 김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리스도의 생명의 그 피가 아니면 마시지 않고, 그 살이 아니면 먹지 않으시며 그 지시가 아니면 아무것도 행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소생 역시 그 살과 그 피를 먹고 마시며, 그로 말미암아 사는 자가 함께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므로 같이 울고 웃게 되었사오며, 함께 주를 찬미하게 되었음을 믿사와 소생은 끝없이 기쁨이 넘치나이다.

아! 현대 소위 기독교도의 깊은 상처를 무겁게 등에 진 진정한 주님의 종이시여, 선생께서는 뼈 한 개, 피 한 방울 살 한 점이라도 온갖 제도와 의식으로 이 땅의 자라나는 신앙생명을 죽이고 있는 기독교를 위하여 바치시는 것처럼, 만사에 철없는 소생도 역시 비록 나병에 시들은 남은 뼈 한 개, 살 한 점, 피 한 방울일지라도, 聖朝誌를 위해 또 반도강산을 위해 애쓰시는 선생님과 또 함께 진심으로 수고하시는 여러 선생님들을 위하여 오로지 기도하기에 바치려 하나이다.

아! 복음의 나팔인 그리스도의 종이시여, 주님의 피에 젖은 성조지를 통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외쳐 주소서. 하 많은 줄인 영혼들은 비진리의 그물에 휩싸여 갈 바를 못 찾나이다. 사이비한 복음과 신앙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온갖 불의로 선혈이 흐르는 영의 상처를 부여안고, 그래도 거짓 의식과 제도에서 그나마 힘을 얻으려고 이리저리 헤매며, 지식적으로, 명예적으로, 권력적으로 날뛰기만 하는 거짓 목회자들의 노리개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아이들을 진정한 복음과 진리 안으로 인도하실 이는 선생님들이라고 복음 안에서 굳게 믿습니다. 이 땅 위에 것을 희생하고 하늘의 것 전폭으로 사시는 그리스도의 충실한 종이시여, 비진리의 그물에 싸인 불쌍한 그들을 복음의 진리로 해방시켜 주옵소서. 거짓 목자들의 불의에 의의 피를 흘리고 사경에 이른 그들 위에 주와 함께 피를 쏟으소서. 그들의 깊은 상처에 주와 함께 살을 찢어서라도 채워 주시고 싸매어 주옵소서.

아! 조선의 중한 상처를 짊어진 복음의 나팔이여, 이러한 일들이 당신의 할 일이 아니오니까? 피를 쏟으시고 살을 찢어 주옵소서. 예로부터 성령의 역사와 진리가 약동하는 곳에는 순교자가 있었지요. 또 순교의 피가 흐르는 거기에서 복음의 진리는 새롭게 사람의 심중에서 생명적으로 움트지 않았습니까?

아! 20세기의 순교자는 누구라고 하겠나이까? 소생은 선생님들이라고 복음 안에서 믿음으로 확신합니다. 오! 하도 많은 제단에 제물은 많되, 우양의 그것뿐 정말 살과 피를 볼 길이 없으니 어떻게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중에서 발생된 <성조> 지를 통하여 성령의 불길이 반도강산을 모조리 불살라 복음의 향내 그윽한 꽃동산으로 화하여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나이다. 활석이 되신 오! 주여, 당신의 진실한 종 김선생을 통하여 성취할 일이 많사옴을 믿사옵나이다. 항상 건강과 은총을 주시옵고, 성령의 역사가 힘차게 운동하여 주옵소서. 함께 노력하시는 여러 선생님 위에도 당신의 은혜의 전폭으로 충만하게 임하옵소서.

오! 주여, 당신의 종들을 통해 일어나는 성령의 맹렬한 불길이 당신의 요구하시는 대로 삼천리 강산으로부터 전 우주를 다 채워 나가게 되옵기를 간절히 원하와 부족한 죄인이 오로지 구 속의 피를 의지하여 항상 비나이다. 아멘, 아멘.

그리스도의 복음의 나팔인 김 선생님, 철없는 소생의 형편을 대강 기록하나이다. 꽃다운 육체를 나병에 빼앗긴 가련한 자 중의 하나이옵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불행스러운 나병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알지 못하는 복음의 생명수를 맛보게 된 것 진정 말씀으로 다할 수 없게 감격하와 눈물 섞인 찬송이 부절히 넘치나이다. 성조지를 통하여 소생의 곯아 떨어졌던 생명이 다시 소생함을 얻은 것은 1932년 부산 감만리(戡蠻里) 나병원에서 손양원(孫良源) 전도사님이 성조지에서 얻은 소감으로써 설교하던 때였습니다. 그 당시 감만리 교회에서 손양원 전도사님은 성조지를 갖고 사경공부처럼 일주일간 설교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로소 그 때부터 부산 감만리 나병원에도 복음의 꽃송이들이 드문드문 피어나게 되었지요. 암흑에 잠겼던 감만리 교회는 비로소 광명을 맞이하게 되었지요. 곯아 떨어졌던 뭇 생명들은 생생하게 소생되어 갔습니다.

아! 모든 형식과 의식에 결박되어 고통과 번민으로 뜻없이 예수를 믿었던 소생도 선생님이 먹이시는 생명적인 참 진리로 해방을 받아 한없는 기쁨이 넘쳤나이다. 이렇게 뭇 생명들이 영육의 심산 고통에서 해방을 받아 복음의 희열 속에서 재미나게 살아 나가던 중, 불행하게도 소위 교회내의 목회자라고 하는 몇 사람의 시기로 인하여, 손양원 전도사님도 감만리 교회의 일을 못 보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는 우리들의 약한 신앙동지들도 교권자들이 위협하는 바람에 한 사람 두 사람 차차 다 떨어져 나가고 육백여명 중에서 겨우 5, 6인이 복음 안에서 참 진리를 호흡하는 한 식구가 되었나이다. 그래서 그 후 1933년에 성조지를 받아 볼 마음은 간절하였으나, 무지몽매한 반대자들의 압박과 물질이 없어 못 받아 보다가, 겨우 신앙 동지 중 한 사람이 원외에서 타인의 이름으로 성조지를 받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 우리 동지들은 병원 구역내에서 이를 읽지 못하고 반대자들의 눈을 피하여 병원 뒷산에 은근히 모여 소나무를 의지하고 열독할 때마다 썩어짐이 없는 진정한 부흥이 되었더이다. 그러다가 그것도 반대자들의 조사로 탄로되어 아무 조건 없이 이단파에 속한 자들이라 하여 무수히 박해를 당하였습니다. 그 후로는 청색 빛 책만 보이면 기어코 조사를 하므로, 얼마 동안 읽지 못하고 감추어 둔 일도 있었습니다.

소록도 자혜의원

아! 할 수 없는 나병으로만 인하여 의식주 때문에 그들의 지배를 받고 있던 우리들의 답답함이 어떠하였겠습니까? 그 후로도 갖은 파란이 누차 있었나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한 사람 두 사람 차차 전도가 되어 남녀 합이 20여명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신앙의 벗들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하여 혹은 고향으로 혹은 일본으로 가 버리고 감만리 교회엔 한 10여명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생과 함께 나오게된 신앙동지 5인은 1934년 양구월에 여기를 자퇴원하고 경성으로 올라가 얼마동안 고생하다가 10월 하순에 나환자 모집으로 전남 소록도에 오게 되었습니다. 우리 다섯 일행은 경성 있을 때 김선생님을 한 번 찾아뵈었으면 하는 소원은 간절하였습니다만, 나환자의 몸으로 선생님을 찾아 뵈옵기가 난처하와 찾지 못하고 고달픈 가슴에 애석과 비애를 품고 하염없이 솟는 뜨거운 눈물 속에 발길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소록도에 와서 입원하와 교회의 내막을 살펴본 바 역시 통곡의 눈물이 없지 못하였습니다.

아! 복음의 나팔이신 선생님, 이 소록도에도 영육이 부패하여 비애에 젖어 죽음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현재 이천여명이오며, 이 앞으론 오천여명이 될 터이온데, 가련하고 불쌍한 이 생명들을 어찌 하겠습니까? 육이 부패한 것도 원통하다 할진대 영혼까지 썩게 되면 얼마나 더 불쌍한 자가 되겠습니까? 인간의 사랑 아닌 사랑을 가진 선생님, 우리 소록도도 특별히 잊지 마시고 복음 안에서 우리 주 예수와 함께 힘써 주시고 돌보아 주시기를 간원(懇願)하나이다.

금년에는 신앙동지 4인중에서 성조지 한 질은 받아 보오나, 남병사 여병사의 구역이 달라 함께 볼 수 없사오니 적지 않은 불편을 느낍니다. 대금을 보내어 한 질 더 주문하여 보려고 하나 금전을 구경할 수 없는 우리 무산자로서 당분간 하는 수 없이 주께 맡기고 기도할 따름이옵더니, 금번에 참다 못하여 염치를 무릅쓰고 답답한 사정을 선생님께 고백하는 것이로소이다. 선생님께서는 변치 않는 주님의 사랑으로 특별 재량하시와 성조지 1, 2부만 힘 자라는 대로 무대로 생각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그리고 이 앞으로 지우들이 많이 생길 여망이 있사오니 명년에는 다소간이라도 대금으로 주문하여 볼 것입니다. 차처(此處) 동지 일행은 남에 ○○○, ○○○, ○○○, 여에 ○○○, ○○○등이오며 이 벗들이 같은 소망으로 문안하옵고 성조지 속간을 위하여 주께 간구함을 마지않습니다. 변치 않는 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같은 복음생명을 호흡하며 기도와 사랑 안에서 영으로 동고동락하기를 부절(不絶)히 빌고 있나이다. 아멘. 3월 15일 소록도 갱생원 남부 철없는 소생 문신활(文信活) 배상」.

2. 1935년 5월 21일자

(김교신전집 5권, 일기 1935년 5월 27일자에 수록)